2012.01.24
센티멘탈시너리 :: time after time
그들의 연애를 봐도 좋고 안 봐도 좋고.
학교를 쉬다가 다시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귀찮고, 걸림돌이 많은 일이었다. 먼저 만나는 얼굴들을 새로이 외워야 했고, 바뀐 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했고, 함께 수업을 들을 친구들을 새로이 수소문해야 했다. 그러니까 요는 성규가 평범하게 군 생활 2년을 끝마친 복학생 오빠라는 뜻이다. 2년의 시간동안 학교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처음 보는 건물 몇 개가 있었고, 저와 함께 입학을 했던, 파릇파릇 하고 젖살이 통통하던 여자 동기들은 벌써부터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성규와 함께 입학을 했던 남자동기들은 벌써부터 아저씨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는 것이다.
"걔 이름 뭐였지?? 걔 말이야..머리 파마하고..얼굴 하얗고..작고..그 있잖아.."
"누구? 지연이?"
"어 그래 걔 맞아 걔였어.. 예쁘더라.."
"어..예쁘더라.."
성규가 윤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자그마한 잔에 담긴 소주를 들이켰다. 차갑고 뜨거운 것이 넘어가는 곳곳 마다 속을 긁으면서 자국을 낸다. 복학생들의 대화는 다 거기서 거기인, 그렇고 그런 내용들뿐이라서 같은 복학생인 성규 자신조차도 가끔은 양미간을 찌푸리고는 했다. 그래서 이번의 주제는 신입생 여자아이인 모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복학생오빠(혹은 아저씨)들의 음흉한 마음이 제일먼저 향하는 곳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리버리한 꽃다운 신입생 여자아이들이다.
"고거고거 웃을 때 보조개 쏙 들어가는 게 그렇게 예쁘더라"
성규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나마나 고 예쁜 여자애를 어떻게 꼬실 것인가 하는 얘기가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며칠 전에는 수현인가? 하던 애를 입에 올렸던 것이 떠올랐다. 분명 윤기가 슬슬 흑심을 드러내려고 하니까 단번에 뺀찌를 놓았다고 했었다. 그러니까 다음 표적이 지연이라는 건가보다. 요컨대 복학생들 눈에 신입생이 예쁘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연이 별로 예쁘게 생기지 않았다거나 못생겼다는 말은 아니었다. 지연이라는 신입생 아이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남자라면 한 번쯤은 돌아서서 얼굴을 확인해 볼 정도로 예뻤으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성규가 가만히 생각하기에 봉사활동 동아리라는 것이 남녀노소가 가입하기에 부담이 없고 쉽다고 하지만 올해의 신입생들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성규는 제 전전 기수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 남자가 6명에 여자가 2명이었지.. 그리고 바로 전 기수가 남자가 8에 여자가 1...그리고 성규가 가입하던 해에 남자가 8에 여자가 2명이었다. 그리고 성규가 휴학하고 있을 때도 여자는 고작해야 두, 셋 남짓이 전부였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기이하게도 남자가 5에 여자가10이었다. 이상하다 이상해.. 고개를 좌우로 갸웃갸웃 거리는 성규를 윤기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다가 피식 하고 웃었다.
"야야.. 김명수 말이야 김명수.."
"김명수??"
"그래 김명수 말이야."
의아스럽게 바라보는 성규에게 윤기는 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경영학과 12학번 김명수.
자로 잰 듯한 번듯한 외모에 굳이 능동적으로 사람을 사귀진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가리지는 않는 그의 인간성까지 덧붙여져서 여러 입에 오르내리는 경영대 꽃돌이. 그게 바로 김명수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을 짓는 성규에게 윤기는 저가 들고 있던 수저로 상을 탁- 하고 내리치며 말했다.
"걔 우리 동아리잖아 멍청아.."
성규는 본디 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특별히 마음을 쓴다거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못되었다. 본성이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못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하지 못하는 탓이었다. 그러니까 김명수도 모를 수 밖에. 아 그렇구나 하고 머엉 하게 있는 성규에게 윤기는 '조만간 얼굴 볼 수 있을 거다.' 하고는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중간고사 끝나고 뒤풀이한다더라."
*
윤기와의 대화 이후 성규와 명수의 만남은 뒤풀이까지 갈 필요도 없이 더 빨리 이루어졌다.
아침9시부터 있던 수업에 들어갔더니 예고 없는 휴강소식이 날아들었다. 갑작스레 생긴 미묘하게 붕 뜨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동아리방이었다. 다른 동아리들은 꼭 한 두 명씩 동방에 있기 마련이건만, 이놈에 동아리는 동방에 사람이 있는 걸 보기가 더 힘들었다. 덕분에 성규의 모자란 잠을 채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어서 동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성규는 동방 한쪽 벽면에 비치해 둔 소파에 누워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누가 붙인 건지 유치하게도 야광별 몇 개가 빛이 바래서 처절하게 붙어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조용히 중얼거리며 오른쪽 팔뚝을 들어 빛을 가리듯 제 눈 위로 살짝 올렸다. 까맣게 내려앉은 시야에서도 빛이 바랜 야광별이 여기저기에서 반짝반짝 거렸다.
"아..."
어색하게 동방을 울리는 인사소리에 성규는 제 손에 올렸던 제 팔뚝을 내렸다.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귀찮아 눈동자만을 굴려 소리가 난 곳으로 돌리자 신입생인 듯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된 일인지 혼자 들어온 남자는 손에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와 문 앞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성규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며칠 전에 윤기를 통해 들었던 경영대 꽃돌이 김명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동방에 들어왔다는 것은 동아리의 일원이라는 뜻이고, 저가 알기로는 김명수 말고는 저런 말끔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 네가 바로 소문의 김명수로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이는 명수에게 알겠다는 뜻으로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경영학과 김명수입니다."
성규는 방금 전 인사를 할 때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를 들으며 제 오른손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휘휘 저었다. 귀찮음이 가득 담긴 그 행동은 이제 알겠으니 조용히 좀 해다오. 하는 것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조금씩 훔쳐보는 명수는 성규의 깊은 뜻을 용케도 알아먹은 것인지 조용히 저쪽 구석의 테이블로 향하고 있었다. 공부라도 할 참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들고 온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꽃돌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연필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규는 다시 제 팔뚝을 눈 위로 얹었다.
*
성규가 명수를 다시 만난 것은 밤이 늦은 도서관이었다. 사실 임용고시만 붙으면 된다지만 장학금을 위해서 시험공부를 그만 둘 수는 없어 찾은 도서관이었다. 막바지로 치닫는 중간고사를 따라 도서관도 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성규는 제 전공서적을 바리바리 싸 들고 도서관으로 막 도착한 참이었다. 도서관 자리는 워낙에 경쟁률이 높은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서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다. 성규는 자리 배석기 앞에서 주섬주섬 제 학생증을 꺼내어 검색기에 가져다 대었다.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떠오르는 메시지에 성규는 한 숨을 푹 하고 내 쉬었다. 이렇게 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한 밤중이라고 해도 시험기간의 동방은 부산할 것이 분명하기에, 성규는 근처의 사설 독서실을 머릿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분명 근처에 서너 개 정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대충 제일 가까운 곳을 생각해 낸 성규는 제 품에서 스르르 하고 미끄러질 듯 한 전공서적을 다시 고쳐 잡아 올렸다. 이왕이면 빨리빨리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자리 없으세요?”
바쁘게 도서관의 출구로 향하는 성규의 발걸음이 잡힌 것은 조금 익숙한 듯도 낯선 듯도 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 목소리를 어디에서 들었던가. 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을 안고 돌아본 곳에는, 저처럼 전공 서적을 한 아름 들고 서 있는 명수가 있었다.
"제 자리 드릴게요. 연장 두 번 남았어요."
뭐? 하는 의문이 터지기도 전에 명수는 방금 전 성규가 서 있던 배석기에서 자리 연장을 마치고는 좌석표와 학생증을 쭉 내 밀었다.
"안 받아요?"
재촉하듯 아래위로 두세 번 흔들리는 손을 보고 나서야 '어? 어.. 고마워' 하며 그의 손에 들린 학생증과 좌석표를 잡아들자 이번엔 명수의 손에서 힘이 빠지질 않는다. 어랍쇼? 오른쪽으로 끌면 같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끌면 같이 왼쪽으로 같이 움직이는 명수의 손을 보며 성규는 양 미간을 가운데로 모았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이리저리 같이 흔들리는 손을 보던 눈을 들어 명수를 보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저를 바라보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번호.."
"뭐??"
"핸드폰 번호 알려줘요.."
내 자릿값이요. 하고 덧붙이며 명수는 입술을 끌어 호선을 만들었다. 조금은 어이없는 이 상황 속에서 성규는 아, 내가 꽃돌이가 웃는 것도 구경 하는구나 하며 멍하게 명수의 핸드폰에 제 번호를 꾹꾹 눌러 찍었더랬다. 성규의 번호가 찍힌 핸드폰을 돌려받은 명수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르며 '나중에 연락 꼭 받아줘요' 하고는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홀연히 뒤돌아 가 버리는 것이다.
명수가 돌아서자마자 성규의 핸드폰이 찌르르 하고 울리다가 곧 죽어 버린다. 그리고는 곧 부재중 전화 1통 이라는 메시지가 화면위로 떠올랐다. 부재중전화 1통, 분명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이 전화는 방금 전 명수가 저에게 남긴 번호일게 분명했다. 성규는 가만히 명수를 떠올렸다. 홀연히 나타나서 홀연히 사라지는 김명수. 경영대 꽃돌이. 표정도 없이 저를 바라보는 그 꽃돌이를 한참을 떠올리다가 성규는 곧 제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낑낑거리며 한가득 들고 있던 전공서적을 추스리고는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그 흔한 컬러링도 없이 뚜르르르 하는 신호음이 귓구멍으로 흘러들어온다.
"왜요?"
여보세요. 도 아니고 대뜸 왜요? 하고 물어오는 명수에게 성규가 화를 낼 틈도 없이 급하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라고 묻자 이번엔 푸스스하는 마른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히 알죠. 성규형.
마무리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까지. 귓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명수의 목소리가 성규의 전신으로 훅 하고 퍼졌다.
*
[시간 괜찮아요?]
하고 홀연히 온 문자가 발단이었다. 갑작스레 날아 들어온 문자에 '어 왜?' 하고 문자를 보낸 이유는 첫째가 남아도는 시간 때문이었고, 둘째가 명수의 바람빠지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서였다. 사실 순서가 좀 바뀌어도 좋기는 했다. 어쨌든 문자 답신이 완료 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명수는 [그럼 나 술 사줘요] 하고 문자를 보내왔더랬다.
"나 형이랑 술 마셔보고 싶었어요."
만나자마자 했던 질문이 '무슨 일 있었냐?'였다. 그리 깊은 사이도 아니고 고작 두어 번 지나치듯 만나 본 선배에게 술을 사달라고 하는 이유를 파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규를 비웃기라도 하듯 명수는 가볍게 웃으면서 당연하게도 대답을 해왔다. 그러고는 메뉴판을 뒤적이면서 '제가 시켜도 돼요?' 하고 물어와 성규를 당황 시켰다. 그 것을 내색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자 '와 고마워요' 하더니 열심히 메뉴판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근데 너 친구 없어?"
뜬금없는 성규의 질문에 메뉴에 처박던 고개를 들어 올려 성규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곧 소리 없이 씨익 하고 웃으며 '친구 있어요.' 하고는 다시 메뉴로 고개를 숙인다.
"근데 왜 혼자야?"
"형이랑 약속한건 나잖아요. 맥주 괜찮아요?"
"어.."
이번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대답을 하더니 혼자서 메뉴를 정하고는 호출버튼을 누른다. '여기 쏘야볶음이랑 맥주요!' 주문을 마치고 성규를 보는 눈이 웃었다.
"형은 왜 동아리 안 나왔어요?"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 열이 오른 얼굴로 밤바람이 시원하게 쏘였다. 봄을 넘어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의 밤은 춥지 않고 선선했으며 주황색 가로등이 비치는 골목길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바빴어. 그런 너는 날 어떻게 알았냐?"
"다른 선배는 다 소개를 받았는데 형만 못 봤어요."
대답하는 말에 웃음기가 약간 섞여 있었다. 은은하게 웃는 명수의 얼굴을 보다가 이번엔 성규가 풋 하고 웃었다. 꽃돌이는 웃는 게 참 자알 생겼구나. 평소엔 속으로만 묵혀뒀을 말이 입 밖으로 절로 툭툭 하고 튀어 나왔다.
"형은 되게 귀엽네요."
마치 도서관에서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처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와 말투로 툭- 하고 말을 내 뱉고는 제 자리에 우뚝 서버린 명수를 보고 성규도 자리에서 우뚝 서 버렸다. 정면을 바라보던 명수가 몸을 살짝 틀어 성규를 바라본다. 명수의 시선에 마른침을 꼴깍 넘긴 성규가 제 눈알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로 굴렸다.
"형 눈이랑, 코랑, 두 볼이랑"
명수의 손이 순서대로 성규의 얼굴을 훑고는 두 볼 위에 안착 하였다. 손이 닿았던 곳곳 마다 불에 데인 듯 뜨겁게 열이 올랐다.
"입술이랑."
성규의 두 볼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금세 훌쩍 잘 생긴 얼굴이 코앞까지 와서는 씨익 하고 웃는다. 그리고는 쪼옥- 하고 성규의 입술에 명수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다 귀여워."
바람이 불었다.
벚꽃은 다 떨어져서 사라져 버렸는데, 벚꽃에나 어울릴 것 같은 달큰한 바람이 불었다.
정작 글이 두근두근하지가 않다....;;;;;;
거기다가 쓰다보니까 오류가 생겼는데 막판에 알았다..
수정할 수가 없었다...
아...아..아..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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