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하나

[현성] 자냐?

(청)새치 2016. 2. 23. 02:59



2012.06.24




Rachael Yamagata::Even If I Don't







자냐?

그 리고는 깜빡 깜빡.. 커서가 물음표 뒤에서 약 올리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걸 빠안히 쳐다보다가 이번에는 앞에 나란히 적힌 '자냐?' 를 본다. 갑작스레 오스스 돋아 오르는 소름에 백스페이스를 핸드폰이 부서져라 열심히 터치 한다. 딱딱딱딱 하는 인위적인 키보드 소리와 함께 적힌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소름이 돋아서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남세스럽게도 미련을 뚝뚝 떨구는 구 남친 스러운 문자를 적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탓이었다. 혹시라도 그걸 누가 봤을까 싶어 재빠르게 고개를 이리저리 붕붕 저어보지만 곧 그 것이 쓸모없는 일이 란걸 제 방 벽지를 보고서야 알아챈다. 먼저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휴욱 하고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의자 등받이에 깊이 묻는다. 푹신푹신 한 의자에 온 몸이 묻힌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아가리를 쫘악 벌리고 있는 책 위로 내 던진다. 툭- 하는 소리를 내며 핸드폰이 책 위로 나뒹굴었다. 두 손을 모아 온 힘을 다해 얼굴을 가린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다.


어쩌자고 굳이 핸드폰을 켜고 문자 창에 그 녀석의 번호를 입력하고 미련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그런 말을 써 넣고 있었는가 하는 것은 충분히 깊이가 있는 고민거리다. 일주일, 아니 5일이나 지났던가. 하고 생각을 해보면 그래, 그래도 일주일은 돼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애절하게 눈물 콧물을 찍어내면서 이별을 고하던 모습을 보던 게? 아니, 아니다. 그럼 그  얼굴에 뜨거운 커피물을 끼얹으며 시크하게 이별을 고하던 게? 이것도 아니다. 그렇게 세련되게 헤어지지 못했다.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를 하며 온갖 물건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이별을 고한지 벌써 일주일이 다 돼 간다는 소리였다.


시 간은 벌써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시험기간이라고 늦게까지 책은 펴 놓고 있었지만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았다. 문득 짜증이 솟구친다. 사람이 이별을 하면 이별주도 마시면서 위로도 받는다는데 딱히 그런 행위를 해줄만한 상대가 없었다. 다들 인사를 붙이기 무섭게 도서관 자리전쟁에 참전하기 바쁜 탓이었다. 다시 한숨이 푸욱 하고 나온다. 술이라도 한잔 하면 이 기분이 풀릴 것도 같은데....부질없이 들여다보는 핸드폰 통화 목록은 일주일이 다 돼 가는 이 시점에도 더 없이 깨끗하고 청정하기만 했다. 누가 보면 애인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물론 일주일 전에 이별을 고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솔로인게 맞다- 엄마, 아빠, 첫째누나, 엄마, 첫째누나, 첫째누나, 막내누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족들의 목록에 진저리가 올라올 무렵이었다. 간지럽게 하트까지 붙은 익숙한 이름이 딱 밑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전 날짜가 찍힌 그 이름. 일주일전 거리에서 같이 온갖 것들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화를 삭이지 못해 씩씩 대며 돌아선 그 상대였다. 이 뒤는 볼 필요도 없이 눈에 훤하다. 아마도 똑같은 이름이 끝까지 쭈욱 연달아 있겠지. 그럼에도 핸드폰을 끄지 못하고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내리 읽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는 일이었다.


그런데
상세보기를 하고 있는가.


하 는 것은 충분히 심각한 문젯거리가 될 수 있다. 미간을 좁히고 핸드폰 액정을 내려다본다. 제일먼저 익숙한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하던 되도 않는 토끼애교 사진. 그게 프로필 사진이었다. 몇 백번을 더 보았던가. 볼 때마다 속이 이상하게 간질간질 해 지는 사진이었다. 무방비하게 한껏 해사하게 풀린 얼굴에 머리위로 귀엽게 갖다 붙이 손가락까지, 정말이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애가 참.........' 하게 될 정도로 사진 속 인물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놈이 하는 감쪽같은 위장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것은 몸으로 체득한 사실이었다.






연 인들의 달콤한 꿈과 환상과도 같은 첫 키스. 그 것의 기억은 날카롭고도 예리하게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형이 있어서 내 세상은 흑백이 아닌 빛이 생겼어요!' 라던가. 하는 소리를 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퐁퐁 쏟아 내렸더랬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멍때리는 사이에 입술도장을 꾸욱 하고 찍었더랬지. 그때까지만 해도 애가 참..... 감수성이 뛰어나구나.. 싶었더랬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 내 입술을 향해 돌진하는 놈의 얼굴을 저 멀리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참 부질이 없으면서도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소원이었다.



전화, 문자,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연 인이 생긴 이후 서로에게 귀속이 되는 것들. 신경을 쓰게 되는 것들이었다. 핸드폰은 정말로 1분1초가 흐르기 무섭게 띠링띠링 하는 알림 음을 토해 냈다. 제일먼저 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뭐했어요?, 재밌어요? 밥은 먹었어요?, 차 조심해요' 같은 별 영양가 없는 말들로 설왕설래를 하고 나서는 '오늘은 공강 어때요?' 하는 문자, 가끔은 카톡이 날아 들어온다. 그리고는 '오늘은 형이랑 카페에서 데이트^^' 하는 것들이 업데이트 됐다는 알림이 오는 것이다. 처음에야 성실하게 일일이 답을 다 해줬더랬다. 그것도 친절하게, 그리고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미소까지 띠우면서. 근데 그것도 어지간해야 말이 되는 거였다.


확 실히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끊임없이 밀려드는 연락들을 다 상대를 해야 되는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들 때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 한없이 까만 미래만이 눈앞에 떠올랐다. 결국 한두 번씩 놈의 연락에 답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놈은 비장한 각오라도 선언하는 것 같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 난 형 연락이 없으면 사막에 혼자 떨어진 토끼처럼 말라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 라고. 그러면서도 생긋 하고 웃는 모양새는 가히 공포영화 속의 싸이코패스와도 같았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그리고는 결국 터지고 만 것이다.  '형은 이젠 내 연락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제가 질렸나봐요' 하고 놈은 말했다. 전에 없이 무서운 얼굴표정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천천히 설명 좀 해 보라는 말에 놈은 말없이 제 핸드폰을 앞으로 쭉 내 미는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얼 하는 모양새인가 싶어 마지못해 받아 든 핸드폰에는 통화 목록이 떠 있었다.



'내 성규♥'

미 리 말하건대 나는 추호도 놈의 성규가 되겠다 한 적이 없었다. 놈의 연인이라는 타이틀은 기꺼이 받들 수 있었지만 놈의 성규가 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내꺼지 지가 뭔데 내 성규라고 하느냐 이 말이었다. 어쨌든 놈은 이름을 '내 성규♥' 라고 저장을 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통화목록에는 '내 성규♥' 가 징그럽게도 그득그득그득 차 있었다. 그것도 죄다 '통화실패' 로.


처 음엔 물론 조근조근히 말했더랬다 '나 그때 시험이었잖아.' 라고 자비로운 미소를 띠며 충분히 다정한 목소리로. 그러자 놈이 눈썹을 꿈찔 하더니 '형이 언제  그랬어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과도 같은 싸움이 시작 되고 만 것이었다. 온갖 유치한 말들로 설왕설래를 하다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말았다. 그 것은 싸움에 몸을 쓰겠다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몸을 썼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싸움의 끝은 온갖 소지품을 바닥에 패대기치며 이별을 고한 것이었다. 물론 죽어도 핸드폰은 패대기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이성과 정신머리는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 쨌든 그러고서 일주일이 지났다는 게 중요했다. 핸드폰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해졌고, 인맥은 무서우리만치 좁아져 있었다. 이게 다 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뿌득- 하고 이가 절로 갈리었다. 그럼에도 핸드폰 속에 놈의 연락처는 그대로 남아있었고 통화목록 속에는 놈의 이름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그 것도 모자라 시험공부를 해도 모자랄 이 시간에 미련이 흘러넘치는 문자를 찍고 있다니... 한심하기도 하여라. 쯧쯧, 하고 혀를 차 보지만 그래봤자 누워서 침 뱉기라 마음이 풀리지가않는다.


한 술 더 떠서 연락처 속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아직도 뭉클 해지는 마음 한구석을 어쩌면 좋은가 하는 것도 아주 크나큰 문제였다. 그리고 절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그 몹쓸 애교도. 자꾸만 생각이 나는걸 어쩌냐구.  아 정말이지 되는 게 없는 새벽이다. 복잡한 마음에 머리를 책상에 박아 넣자 쿵- 하고 제법 큰 소리가 울린다. 머리가 꽤 아프다. 여기서 더 머리가 나빠지는 건 곤란한데... 해봤자 부질없는 생각이란 걸 안다. 그리고는 '띠리링'.


띠 리링. 이 무엇이던가. 하는 것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생각이다. 그건 앞뒤 잴 필요도 없이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였다. 번쩍번쩍 하고 핸드폰 액정이 오래간만에 반짝인다. 침을 꼴깍 넘기고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다. '남´▽`' 이 보낸 문자라고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형...자요?]



아! 미련이 흘러넘치는 이 새벽이여!!!!!








그...의식의흐름이라고 아십니까?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