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인사이드파크 호텔
2012.06.30
성규는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는 선글라스를 치켜 올렸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 상황을 어째야 좋을지 생각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런 성규의 맘을 알리가 없는 주변에서는 왁자지껄 오늘의 승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갈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또 죄다 초록색 유니폼뿐이다. 아.. 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다. 성규가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여기서는 저의 노란색 유니폼이 너무나도 눈에 띄다 못해 너른 초원에 혼자 뚝 떨어진 병아리처럼 보일 게 뻔했다. 홈구장도 아니고 원정에, 그것도 3루도 아니고 외야에, 혼자서 노란색 유니폼이 쭈구리처럼 홀로 딱 서 있는 이 모습이 얼마나 눈에 띌까 하는 생각까지 떠오르자 이제는 땀까지 삐질 삐질 날 것만 같다. 이런 저의 처지에 모든 원흉이 된 남우현이라는 인간은 저 아래 그라운드에서 멍청해 보일 정도로 얼굴을 붕괴시키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성규가 조용히 주먹을 꾸욱 하고 쥐었다. 비록 부질없는 일일지라도..
그러니까 왜 남우현이라는 인간 때문에 성규가 이런 되도 않는 상황에 처했는가 하는 것을 따져 보자면 전날 밤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충분히 있었다.
까똑.
하고 성별을 알 길이 없는 귀여운 꼬마아이의 목소리가 성규의 핸드폰에서 울렸다. 그렇다. 다른 이도 아니고 성규의 핸드폰에서 그 까똑- 하는 소리가 울린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리는 귀여운 아이의 목소리에 포장된 지옥의 종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거기에 별 거리낌이 없었던 게 성규 자신이라 딱히 변명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 아이의 목소리로 위장한 지옥의 종소리는 바로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 남우현 때문이 맞다. 아니 맞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잠에 들 예정이었던 성규의 성질을 긁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규는 제 성질을 꾹 참고 그 카톡을 친절히도 확인을 했더랬다.
-내일 경기 올 거죠?
그 걸 보고 성규는 잠깐 깊은 고민에 잠겨야 했다. 도대체 이 위인이 하는 소리가 무슨 소리가 하는 그런 고민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일 성규가 가야할 경기는 없었다. 아 물론 무한호크스의 경기는 있는 게 맞았지만 저가 그 '김지폐' 씨와 한 계약에는 그 VIP이용권이 통하는 홈경기 한정이었다. 그러니까 내일 있을 경기는 그 계약 외의 경기라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원정경기라고. 성규의 양쪽 눈 끝이 치켜 올라갔다. 물론 대답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내가 거길 왜?
육성으로 중얼중얼 따라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전송까지 망설임 없이 쿡 하고 눌렀다. 약간의 로딩이 걸리고 메시지는 금방 전송이 된다. 물론 그 옆에 노란 숫자도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는 정적. 그래 정적이었다. 그 메시지를 확인을 했으면 '아.. 안 오는구나.' 라던가 아니면 하다못해 '아.. 그렇구나..' 하는 답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남우현인데 이상하게도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너무 졸려 답 메시지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자는가보다 하고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허참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침대 머리맡에 툭- 하고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성규도 깊은 잠에 들 생각이었지. 그래 그랬었지.
-그녀를 지켜라 날 잊지 못하게
우렁찬 벨소리가 이번에는 울렸다. 정말로 우렁차서 성규는 잠깐 화들짝 하고 놀랐더랬다. 거지같은 남우현이 얼마 전에 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바꿔놓은 벨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참 적응이 안됐다. 남자새끼 주제에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이 남자 아이돌이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성규는 코웃음을 쳤었더랬다. 어쨌든 중요한건 성규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는 거다. 발신인은 확인하거나 말거나 '남우현' 이라고 반짝반짝 발광을 하고 있었다.
"여보세.."
하고 말이 채 나가기도 전에 "어쩜 그래요!!" 하는 우렁찬 남우현의 목소리가 꽂혔다. 어쩜 그러긴... 그러니까 그런 거지.. 싶어 성규는 그저 핸드폰을 귀에 대고만 있었다.
"나 내일 첫 원정 선발인데!!!"
"아.."
"미안하면 내일 와요!!"
분명 그 '아..' 는 아차 하는 '아..' 가 아니라 그저 아.. 그렇구나.. 하는 감탄사에 지나지 않은 '아..'였다. 그걸 무슨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우현은 혼자서 얘기를 진행하는 중인 듯 했다. 그렇다면 현실을 직시 시켜줄 필요가 있다.
"티켓이 없는데 무슨수로?"
"아 진짜 그런 거 걱정했어요?? 내가 누군데! 당연히 있죠!"
거기까지 들었을 때, 아 그래도 이놈이 아예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니구나 싶었다. 솔직히 그렇지 않느냔 말이다. 연인이 이미 예매를 했을지도 모르는 야구 경기 티켓을 본인이 직접 구해놨다지 않는가 말이다. 그건 조금 칭찬을 해주어도 될 일이었다. 그래서 기특한 마음에 덥석, 간다고 말을 했더랬지. 그래 그랬었다.
"아 진짜 내일 경기 끝나고 저녁 같이 먹어요! 아 진짜진짜 보고 싶네."
하면서 전화를 끊었었다.
물론 티켓을 받아보고 전날 밤의 저를 저주해마지 않긴 했지만.
어쨌든 성규는 외야석에서 혼자 쓸쓸히 노란색 병아리 -그것도 11번 남우현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도도히 경기만을 보았다. 그래 오로지 경기만을, 다른 데 신경도 안 쓰고, 옆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욕지거리에도 성규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경기만을 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제 얼굴에 얹은 선글라스를 그라운드 안으로 패대기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혼자서 외야석에 앉아야 했다는 거? 아니 뭐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외야석에서 혼자 야구 본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잖아? 그럼. 무한 호크스가 지고 있나? 애석하게도 그 것도 아니었다. 1:1의 초박빙의 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지고 있는 것 보다는 낫잖아?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냐! 하면 팔짱을 낀 성규의 자세가 문제다 이 말이었다.
그게 무슨 문제냐 한다면 성규도 나름 사정이 있었다. 최대한 몸을 찌그러트리고 신경 쓰지 않는 척 그라운드만을 내다보고 있음에도, 아까 전부터 제 팔뚝에 툭툭 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처음 한두 번은 그저 실수겠거니 생각을 했었다. 그게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니 이건 무슨 시비를 터는 건가 했었더랬지. 그런데 다시 보니 의자간격이 진짜 말도 안 되게 좁더라는 거였다. 그랬다. 그저 의자 간격 그거 하나 때문에 성규는 지금 원치 않는 스킨십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가해자(?) 역시 제 의사가 들어가지 않은 스킨십임을 잘 알고 있어 어디 화풀이 할 곳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거 때문에 김성규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심기가 불편 하느냐 한다면, 맨날 티비에서나 보던 허모씨의 인프라 타령을 성규는 정말 육성으로 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일 정도로 불편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2사에 주자 3루에 타자는 그 김명수가 나오고 있었다. 성규가 아무리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가 관리해야 될 구단의 선수는 잘 알고 있었다. 김명수! 그가 누구던가! 잘생긴 얼굴로 뭍 여성 팬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남우현과는 무한호크스의 소위 말하는 얼빠 양대 산맥이 아니던가!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정말로 그게 다. 라는 거였다. 정말로 그게 다였다. 수비고 공격이고 어디 하나 시원한 게 없어 보기만 해도 왠지 숨이 턱 하고 막히게 하는 김명수였다.
성규는 조용히 한숨을 내 쉬었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다음이닝으로 넘어간 듯 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 성규도 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기회가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음 기회를 잡아야지. 하면서 제 마음을 애써 다스리는 중이었다. 김명수는 유유도 자적하게 타석에 나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휴.. 저 당당한 폼 하나는 일품이지. 야구만 잘하면 정말 완벽한 친구일 텐데.. 하며 성규는 입맛을 다시었다. 내야쪽 좌석에서는 술렁거리며 응원가가 흐르고 있었다. 원정경기임에도 3루에서 들리는 응원 소리가 작지 않다.
그리고 김명수는 초구를 있는 힘껏 쳐 내었다.
공은 시원하게 외야로 쭉쭉 뻗었다. 그걸 보고서 처음에는 아.. 외야 플라이구나. 했었다. 그런데 이 공이 좀 이상했다. 이제 슬슬 땅으로 추락을 할 때가 되었는데, 공은 떨어지기는커녕 힘도 좋게 자꾸만 성규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3루내야에서 왁- 하는 함성소리가 울렸다. 공은 마치 슬로우 모션이 걸린 비디오 화면처럼 천천히 성규에게로 날아오고 있었다. 어??어?? 당황 하면서도 어디로 몸을 움직여야 좋을지 몰라 그저 얼어붙어 공을 노려보던 성규는................... 따악.... 하고............
잠깐 동안 온 몸에 진득한 고통이 내달렸다. 다행히 머리를 맞은 건 아닌지 공은 성규의 다리 사이에 껴서 하얀 얼굴을 빠끔히 내 밀고 있었다. 그래 요 놈이란 말이지. 아직까지도 얼얼하게 통각이 흔들흔들 거리는 제 다리를 보다가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린다. 예고도 없이 투런홈런을 때린 김명수는 영웅이 돼서 덕아웃에서 혼돈의 세레모니를 당하는 중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낀 남우현도 아주 잘 보였다. 근데 그게 문제였다. 그 사이에 낀 남우현이 아주 잘 보인 게 문제였다 이 말이다.
성규는 제 속에서 슬금슬금 분노가 고개를 처 드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 걸 막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요는 저 남우현이라는 인간 때문에 오지 않아도 될 야구장엘 와서 원치 않는 스킨십을 당하고 이젠 공까지 맞았다 이 말이렷다. 아주 간단하고도 빠르게 결론이 났으므로 성규는 분노를 막지도 그리고 분노에 찬 제 행동을 자각하지 않았다.
성규는 제 다리사이에 끼어 있던 공을 오른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라운드를 내다본다. 때마침 프런트 직원이 설렁설렁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덕아웃은 아직도 술렁술렁 거리며 기뻐하는 중이었다. 그래 남우현 네놈 덕에 이렇게 다이나믹한 하루를 보낸다 이 말이렷다. 성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초록색 잔디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그 공을 냅다 꽂아 버릴 기세로 분노를 담아 패대기를 쳐 댔다. 담장을 넘어 그라운드로 황망히 날아가는 공을 보며 주변에서는 그저 '워어..' 하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물론 그 공이 프로야구선수 김명수의 데뷔 첫 홈런 볼이라는 사실을 성규는 알리가 없었다.
아 힘들다..
어쨌든 드디어 현재로 들어옴 ㅇㅇ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