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계속

[현성] 인사이드파크 호텔

(청)새치 2016. 2. 23. 03:05
2012.09.01


성규는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티브이에서는 '현금 서비스 보다는 스위스 눈덩이 론! 60세 까지 기일~게! 갚게 해드립니다' 따위의 대출광고가 질리지도 않고 계속 나왔다. 그래도 성규는 자리에서 일어서기는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성규의 옆에는 건장한 남자, 김지폐씨가 앉아 있었다. 손에는 맥주 캔도 하나 들고, 앞에는 피자 한판도 있었다. 주문하시면 따끈따끈한 피자를 따끈따끈 하게 배달해다 준다던 그 피자였다. 티브이의 오른쪽 상단에는 무한호크스 VS 한학이글스 (대전) 1:1 투수 : 안양면 따위의 경기 정보가 둥실 떠 있다. 

"네가 보기엔 저 투수 오늘 어떤 거 같냐?"
"컨디션이 되게 좋아 보여요. 오늘 구속도 잘 나오고 구위도 좋네요. 직구를 어떻게든 쳐 내야 승부가 되겠네요"
"흠.."

김 지폐씨가 깊은 신음소리를 냈다. 별달리 말이 없다는 것은 성규의 말에 딱히 이견이 없이 동의 한다는 뜻일 거고, 깊은 신음을 낸다는 것은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그도 그럴게 벌써 5회를 넘겼는데도 1:1 동점에 양쪽 다 점수는 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김지폐씨는 맥주를 쭈욱 하고 들이켰다. 피자는 아직 한 조각도 줄어들지 않았다. 빈 맥주 캔이 벌써 두개가 쌓였다. 

-네 이곳은 무한호크스와 한학이글스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대전 한밭야구장 입니다. 저는 캐스터......

익 숙한 스포츠 캐스터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리었다. 클리닝 타임이 모두 끝난 모양이었다. 그라운드에는 벌써 선수들이 나와서 저마다 준비 자세를 잡고 있다. 경기는 후반부에 들어서는 6회 초였다. 무한호크스의 공격, 시간은 아직 있었지만 그리 많이 남은 게 아니었다. 되도록이면 이즈음 해서 점수를 내주길 바라는 게 바로 김지폐씨의 생각일 거였다. 타석에는 1번 타자 이호원이 들어오고 있었다. 김지폐씨가 타는 속을 달래듯 맥주를 크게 한 모금을 마셨다. 투수가 발밑을 고르고 와인드업을 했다. 호원의 눈이 날카롭게 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1구 스트라이크
2구 파울
3구 파울
4구 볼
5구 파울
6구 볼
7구 파울

-아 이호원 선수 침착하게 볼을 커트해 나가고 있어요.
-네 저렇게 볼을 커트하면서 치기 좋은 볼을 기다리겠다는 거죠. 영리한 선수에요. 저렇게 계속 공을 커트하면 투수 입장에서는...

벌 써 일곱 개의 공이 투수 입장에서는 버려지고 있었다. 잔뜩 찌푸려진 투수의 표정이 슬슬 불쌍해지려고 하고 있었다. 김지폐씨는 계속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발치에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투수가 손에 로진백을 허옇게 묻히고는 입바람을 훅 하고 분다. 허연 가루가 투수의 코앞에서 나부끼다가 사라진다.

"저러다 역풍 좀 맞아 봐야지."

그 게 맘에 안 들었던지 김지폐씨는 연신 궁시렁궁시렁 거렸다. 그리고 1번 타자 이호원은 그렇게 기다리던 맘에 드는 공이 나왔는지 10구째에 드디어 안타를 치고 출루를 했다. 물론 그 뒤에 2,3,4번 타자가 보기 좋게 삼진, 플라이아웃, 내야땅볼을 치면서 잔루1루로 이닝을 마무리 하였고 김지폐씨는 '기껏해야 직구랑 슬라이더 뿐이구만 그걸 못 쳐?' 하면서 궁시렁댔더랬다.

근 데 사실 그 것은 별 문제가 안됐다. 경기는 아직 세 이닝이 남아 있었고, 다음 이닝엔 5번 타자부터 시작하긴 하지만 그래도 찬스는 만들면 나오는 거니까. 상대편의 공격을 막는 것도 좀 문제긴 하지만 오늘 무한호크스의 투수도 컨디션은 좋아보였다. 그러니까 경기는 앞으로 1점을 누가 먼저 내느냐가 결정적이긴 하겠지만 무승부가 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어쨌거나 결론은 질 것 같진 않다는 거였다. 

-여기는 대전 한밭야구장이구요.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하 는 캐스터의 멘트 뒤에 바뀐 화면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바로 전 이닝의 하이라이트를 주로 내보내고는 하는 그 화면에는 유례없이 관중석의 건장한 남자 둘을 내보내고 있었다. 관중석의 남자 두 명이 왜 나오나.. 하는 것은 따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없었다. 성규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5회가 끝나면 클리닝타임이고 야구장의 소소행사들은 대부분 그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소소한 행사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를 맡고 있는 그 것. 키스타임!!!! 화면에 나온 남자 둘은 곧 열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그 장면까지도 성규는 그저 아..남자 둘이 상품에 눈이 멀어서 저런 짓도 불사하고 하는가보다.. 하고 했을 뿐이었다. 화면은 다시 한 번 전환 됐다. 화면 속에서는 남우현이 벤치에 앉아 멍때리고 있었다. 보나마나 눈은 그 키스신이 나오는 전광판을 향하고 있을게 뻔 했다. 약간의 웃음까지 지으며 입도 슬슬 벌어지고 있었다.

아 저 병신.

성규는 중얼 거리며 그걸 제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참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게 나왔다. 


*


성 규는 제 무릎을 모아 턱을 괴었다. 경기는 벌써 9회 말이었다. 점수는 2:1, 물론 무한호크스가 2점이었다. 극적인 장동우의 홈런으로 한 점을 올리고 다시 득점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김지폐씨는 그래도 신이 나는지 맥주를 벌써 두 캔을 더 마셨다. 경기는 9회 말에 2아웃이었다. 타석에는 3번 타자 최정지가 나와서 늠름하게 서 있었다. 고비였다. 과거 삼진 왕이라는 오명을 깨고 최근 들어 미친 듯한 맹타를 휘두르는 최정지가 하필이면 9회 말에 나오다니. 거기다 투수는 어두운 표정의 이성열이었다. 웬만해서는 마무리로 나오지 않는데 오늘따라 마무리였다. 자칫하면 정말로 시워언하게 연장전 급행열차를 태우는 동점홈런이 나올지도 몰랐다.

화 면속의 성열이 긴장이 되는 듯 로진백을 손에 잔뜩 묻히고는 털어냈다. 날카로운 눈빛이 포수에게로 향한다. 웬일인지 고개를 가로 젓지도 않고 끄덕끄덕 하며 순순히 사인을 받아들인다. 성규는 크게 숨을 들이셨다. 화면속의 성열은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있는 힘껏 공을 내 던진다.

따악-

방 망이가 공을 때리는 소리가 경쾌했다. 성열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뒤로 돌아섰다. 공은 정말로 시원하게 외야로 쭉쭉 뻗어갔다. 중견 자리에 있던 성종이 공을 따라서 열심히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 정말 홈런인가. 싶었던 공은 순간 땅을 향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종이 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잘 맞으면 외야 플라이로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성종의 글러브에 하얀 공이 들어가 있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이빙캐치였다. 멋지게 공이 떨어지는 곳으로 성종이 뛰어들어 공을 잡아내었다. 티브이의 스피커로 관중의 환호소리가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곧 흥분한 해설위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 이성종 선수가 아주 멋지게 다이빙 캐치로 잡아쓰요. 저렇게 으리고 참 작은 션슈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몰라요. 아 정말 이성종 션슈 장합니다 아주.

그러니까 경기는 2:1로 무한호크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결과를 정리하는 캐스터는 '이로써 한학이글스는 또다시 탈꼴찌를 목전에 두고 쓴 고배를 마시고 말았네요.' 라는 말을 경쾌하게 했다.


*


[+] → 앨범에서 사진/동영상 선택 → 카메라 롤 → 선택
[아 멍청아] → 전송

우 현이 멍때리고 있는 사진과 톡은 빠르게 전송이 됐다. 노란색의 숫자는 정말로 전송이 되자마자 사라졌다. 시간은 벌써 열두시가 다 돼 가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니, 잠은 언제 자나 이 사람아. 싶은 마음에 다시 빠르게 [야 넌 운동선수란 게 핸드폰만 붙들고 있냐?] 하고 치고 있을 때였다.

[뭐야 이거 
방송 나갔어요?]
                       [왜 표정 좋던데]
[무슨 표정이 
 좋아요. 
 혐오스럽던데]
                       [왜 너 헤벌쭉 
                        하고 있던데]
[아 그게 좋아서 
  그런 게 아니고]
                       [좋아서 그런 게 
                        아니면]
[아 진짜]
                       [아 진짜 뭐]
[아 형 생각 
 났어요! 
 됐어요?]
                       [아 멍청아]


-친구의 차단처리가 완료 됐습니다.







그래서 언제쯔 탈꼴찌 하는거죠? 한화는?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