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조각

웃자고 쓴 엘규

(청)새치 2016. 2. 23. 03:13




고개를 절대로 돌리지 않는다. 눈동자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다. 그렇다고 발걸음이 늦어져서도 안 된다. 지금의 빠르기 그대로 고개는 돌리지 말고 앞만 보고 목적지를 향해야 한단 말이다. 시야의 한 쪽 정말 한쪽 귀퉁이에 자꾸만 들락날락 하며 잡히는 검고 끄무레 한 것이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본척 해서는 안 된다. 성규의 발걸음은 그렇게 수많은 자기 독려와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그건 어찌 보면 간절하기도 했고 약간의 짜증도 섞였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당연한 일상의 하나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선천적으로 빠르게 방전이 돼 버리고 마는 체력 탓일 거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만 보며 빠르게 움직이던 성규의 다리는 얼마가지 않아 속도가 절반으로 뚝 하고 줄어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는 결국 자리에 우뚝 멈추어서고 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시야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던 것도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어 선다. 국내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외제차였다. 그러한 외제차들이면 언제나 그렇듯 시커멓게 선팅이 아주 잘 된 운전석 창문이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내려갔다. 그리고 나타나는 얼굴은 아주 잘 생긴 미남이다.


이 모든 일의 원흉, 아주 잘 생기고 돈도 많고 능력도 있는 김명수. 그의 얼굴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성규의 눈은 독을 담은 날카로운 것으로 변한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빠끔히 나온 얼굴로 고개를 향한다. 아마도 오늘역시 오래 버티지 못한 상황에 대한 짜증이 다수 섞였을 것이다. 그러한 성규의 상태를 뻔히 신경도 쓰지 않을 명수의 얼굴은 상당히 밝았다. 정말로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만면에 떠오른 미소에는 구김살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 그러니 속에서 열불이 터지는 것은 성규다. 발을 쿵쿵 구르며 외제차 앞에 당도한 뒤에, 발로 한 번 타이어라도 뻥 차 줬으면 소원이 없겠으나 비싼 외제차에 압도당한 성규는 무척 사나운 표정으로 명수가 앉아있는 운전석 창문에 손을 털썩 올렸다. 명수의 얼굴에는 한층 더 밝은 웃음이 떠오른다.


"왜 자꾸 따라오는데."


"형이랑 데이트 하고 싶다니까요"


"난 싫다고!"


성규의 비명 같은 대답이 터져 나오자 둘 사이에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한다. 명수의 어깨는 한 번 으쓱였다.


"유감이네요"


말하는 얼굴은 여전히 조금의 구김도 안 보여서 유감이기는 하지만 그 대담에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성규는 다시 차에서 한두 발씩 떨어졌다. 갑작스레 명수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성규의 몸은 원래의 경로로 돌아갔다. 원래 가려고 했던 외주 의뢰처로, 지금 다시 서두르면 약속시간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성규의 옆으로 이번에도 무언가가 붙었다. 정체는 보나마나 뻔하다.


"왜 따라오고 그러냐."

"스토킹?"


실없는 대답에 짜증 섞인 얼굴이 득달같이 돌아갔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명수의 얼굴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허-참. 한탄 섞인 실소를 내뱉는 것은 성규의 입이다. 어처구니가 없으려니 이렇게도 없어지는 모양이었다. 갓길에 주인 없이 세워 둔 네 차는 어쩌고 오느냐는 말은 이제 하지도 않는다.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찾아와서 수거해 가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바로 며칠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정말 이렇게 따라다니기라도 하겠다는 말일까? 성규의 미간이 모양을 잡는다.


“요기 얼마 멀지 않아서 지구대 있는데 거기 가고 싶냐?”


바란다면 정말로 스토커로 신고를 넣어 다시는 자신을 따라다니지 못하게 해 주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어 목소리에도 강단이 서 있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 하는 명수의 얼굴은 기대 했던 모양새가 아니었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그는 정말로 성규가 어처구니없어 할 만한 말을 다시 꺼냈다.


“아니 지구대는 왜요? 주민 센터로 가야지.”

“너 스토커라며”

“그러니까요, 내 마음에 입주신고 하러 가셔야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말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뱉을 수 있는가. 성규의 입이 정말로 커다랗게 벌어졌다. 이것은 아마도 현실이 아닐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전 인류에의 중대한 사고다. 그러니 차라리 이것은 꿈인 게 낫다. 현실세계의 명수를 앞에 두고서 성규는 열심히 현실에의 부정을 시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명수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기만 해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던 성규의 마음속에는 다시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왜 저 혼자서만 이렇게 온갖 난리를 부리면서 있어야 하느냔 말이다. 어째서 이 세상에는 듣기 힘든 드립을 치는 사람과 그 걸 듣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다 따로 있는 것일까. 낯부끄러운 명수의 그 한마디로 성규의 사고는 거기까지도 미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차오르는 화딱지와 짜증을 그대로 명수에게 풀어버리거나 할 수는 없다. 그 것은 성규의 귀신같은 성정 때문이었다. 본디 번듯하게 잘 나고 잘생기고 예쁜 것에 약한 그 성정 말이다. 속으로는 멘붕하고 짜증을 올린다 하더라도 예쁘고 잘난 것들에게 그런 감정을 쏟아내 본 일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나 잘생기고 또 잘생긴 자체발광 미남 명수에게도 성규가 그 짜증을 쏟아낼리가 없다. 그저 한 숨을 푹 하고 내쉴 뿐.


명수의 고개가 갸우뚱 하고 한 쪽으로 기울었다. 성규의 그 한숨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듯한 행동이었다. 그마저도 잘생긴 명수가 하니 정말 그림 같은 포즈가 돼 버린다. 그러니 여기에서 성규의 가장 큰 고민거리 하나가 등장한다. 이 잘생기고 잘난 김명수란 친구는 왜 이다지도 자신을 따라다니는가 하는 말이다. 잘사는 집안에서 금이야 옥이야 소중히 컸을 김명수가 뭐가 모자라서 아주 평범한 김가 아무개1 같은 성규를 하루가 멀다 하고 뒤꽁무니만 따라 잡고 다니는가 하는 것. 심지어 그 김명수는 아주 미남이기까지 했다. 단점하다 찾을 수 없는 무결점의 외모를 가진 미남 말이다. 그러니 가장 처음에 성규가 다다른 결론은 '인생 너무 쉽게 살아 재미를 잃은 부잣집 도련님의 심심풀이 땅콩 같은 행위' 라는 거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명수는 아주 진지한 얼굴 표정을 하고서 그렇게 말 했다.

'나 완전 심각하게 진심이에요.'

그 왜 있잖아요. 네가 남자라서 좋은 게 아니고 내가 좋아한 네가 남자인거야. 지금 내 마음이 딱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명수는 그 때도 이렇게 낯부끄러운 말을 아주 잘 했다. 그 때의 성규는 그래도 그런 말에 어쩔 줄 몰라 하기는 했다. 그게 다 아직 그런 화법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로 진짜로 스토커마냥 졸졸 따라다니며 그런 낯 뜨거운 말을 쉴 새 없이 해 대는 바람에 지금은 제법 능글맞게 되받아칠 줄도 알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점이라면 그 난이도가 자꾸만 상승 곡선을 그린다는 점일 테다. 그 것이 최근에 들어서는 쌓인 경험이 무색하게도 점점 참아내기가 힘들어 지는 와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그러한 것으로 몰아가기엔 조금 문제가 있다.


성규는 명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가볍게 말을 하자면 인간대인간으로 친분을 쌓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어 느끼는 감정이 호감이었다. 친구사이의 사귐을 유지하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간직하는 것을 기꺼워하는 그런 호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호감은 단순히 가벼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성규 자신이 명수에게 인간대인간으로 가지는 그 호감이라는 감정의 발로를 찬찬히 살펴보면 말이다.

김성규는 김명수의 얼굴을 아주 좋아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첫 만남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성규는 명수의 얼굴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신이란 존재가 있었다면, 김명수는 아주 정교한 설계도면에 따라 들일 수 있는 정성을 한 데 모아 빚어낸 역작이라고 할만 했다. 그러니 그러한 신의 무수하고도 넘쳐흐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양산형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성규가 그에게 향하는 호감을 거두어낼 수 있을 리가! 그러니 성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라는 것이 지금까지 해 온 넌지시 밀어내기인 것이다. 아 어찌 할 수 있는 게 이다지도 작고 가련한 방어뿐이란 말인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러한 신의 정성은 그의 외모를 빚어내는 데만 쏟아진 듯 했다. 아니면 신의 힘이 닿는 한계가 거기까지만 이라던가. 그러지 않고서야 작금의 명수의 행태는 설명이 될 수 없었다. 그러한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그 것도 모자라서 부잣집의 다른 형제 없이 아주 소중한 외동아들이라는 포지션으로 태어난 것 까지 아주 완벽하기만 한 것들만 주어졌음에도 결국엔 커다란 흠을 하나 내어놓은 현재에 대해서! 그러니까 그에게 주어진 한 가지 흠이라고 할 것은 멀리 가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지금 성규 옆에서 헤벌쭉 웃는 행태가 바로 그의 아주 치명적이고 유일한 그의 흠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언제 시간 돼요?"


"없는데?"




이 것이야 말로 정말 n개월째 내용이 똑같으니 가망이 없는 듯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