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조각

성열이가 성규 짝사랑했음 좋겠다.

(청)새치 2016. 2. 25. 11:28



도대체 언제부터였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 건 정말로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이 쫓고 있었고 마음이 갔고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 걸 두고 가랑비가 옷을 적시는 것 같다던가 물이 든다던가 하는 소리들을 두고 내가 바로 그 짝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젖은 것은 내 마음이고 물든 것은 분홍이었다. 내가 형을 생각할 적마다 젖어드는 마음에 느끼는 무게감이 딱 그랬고 감정의 색이 딱 그랬다. 나는 아마도 형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보다고 딱 깨달았을 때부터. 그리고 나는 더욱 날뛰었다. 쉴 새 없이 간질간질 거리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그리고 그 말이 기어코 형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쿵 하고 떨어지는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아마 얼굴에 다 나왔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 보면 형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보이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매달리는 내 얼굴에 간절함이 묻어났을 지도 모를 일이고, 좋은 게 생기면 제일먼저 손에 쥐어주는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태연한척 놀러 가자고 권유하는 내 표정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유야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형이 내 마음을 다 알아 채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무슨 일이 있느냐 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형이 내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내게 무슨 말을 해 왔을까.

“엥? 왜 갑자기?”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당장 그만 두어라.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해라. 아니면 마음은 고맙지만 널 받아줄 수는 없다는 말이나. 다르게는 네가 그런 사람인줄은 몰랐다. 정말 실망이다. 같은 비난까지. 긴 시간도 아니고 아주 짧은 순간에도 그렇게 많은 말들을 떠 올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형의 입에서 나올 법 하지 않아서, 나는 다시 조용히 그 생각들을 접어 구석으로 치워 버렸다.

“네가 맨날 할 말 있는 것처럼 날 보잖아.”

그러니까 아직.

“그런가?”
“어,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