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8 엘규전력: 보름달
한 달에 한 번 이라는 주기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대략 30일에 한 번, 다르게는 매 달 음력 15일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주기에 대해서다. 조금씩 달력에서 위치를 다르게 하는 빨간색 동그라미는 사실은 똑 같이 음력 15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빨간 동그라미 하나를 넘은 뒤에는 다시 30일을 기다려야 다음 붉은 동그라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것은 짧은 기간일까, 아니면 힘이 들 정도로 긴 시간일까. 달력의 그 날짜가 이틀 앞으로 다가올 때 쯤이면 성규는 항상 그런 고민을 하고는 했다. 어느 때에는 손가락을 꼽으며 날짜를 세기도 했고, 어느 때에는 눈깜짝 할 사이에 그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놀라기도 하여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잠시나마 성규의 앞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그 날이라는 사실만은 중요했다. 그러니 몇 년째 이어지는 그 고민에 답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창문은 활짝 열어두고 책상 앞에 고이 놓였던 의자는 창문 앞으로 바짝 대어 놓은 뒤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그 모든 것은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초저녁 즈음에 이루어 지고는 했다. 모두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돼서야 그는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지만 성규의 기다림은 그 때부터 항상 시작이었다. 푸른 하늘에 번지는 주황빛 노을부터 시작해 산 허리로 해가 저문 뒤에 슬금슬금 어둠이 내려올 때 까지 몇 시간동안 성규는 창문 앞에 차리 잡은 채 기다림을 이었다.
때로는 창문 밖으로 바뀌는 풍경을 관찰하며 기다렸고, 때로는 창문 아래에서 가만히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보름달이 조금 고개를 내밀 때에, 중천에 커다랗게 떠올랐을 때에, 아니면 동이 트기 바로 직전에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역시나 무한정의 기다림 뿐이다. 창틀에 고개를 기대어 그렇게 많고 쓸데 없는 생각과 고민을 떠올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저 다만, 갑작스럽게 창문틀에 올라서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
긴 시간이 흐른 끝에 나타나는 그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온 품으로 성규를 끌어안는 것이다. 온 품을 가득 채우듯 뒷목께에 고개를 묻고는 등허리를 온통 끌어안고 한참을 선 뒤에야 한 발짝 거리를 무를 수 있었다. 그 동안 성규는 그의 온 몸에 스며든 산의 냄새를 모두 들이킨다. 그가 만났을 산 속의 수풀과 나무, 그리고 흙의 냄새와 수없이 스쳤을 작은 동물들과 터주 동물들의 냄새들이 온통 스몄다.
“오늘은 오지 못하는 걸까 생각했어.”
“그러진 않아, 다만 내가 오늘은 조금 늦었지.”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그의 얼굴엔 살풋이 웃음이 걸렸다. 검은 머리칼은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렸고 검은 눈동자에는 한 가득 성규의 얼굴이 어른 거렸다. 꽉 찬 보름달이 이미 서쪽으로 더 기울어진 후였다. 커다랗고 뜨거운 해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릴 때 까지 얼마의 시간이 남았을까. 얼마 남지 않았을 시간을 헤아리는 것은 조금 괴로운 일이다. 30일의 시간을 기다려 겨우 얼굴을 보는 시간에 하룻밤을 전부 쓰지도 못한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동이 틀 무렵이면 다시 짧은 입맞춤 후에 그는 산으로 사라질 것이고, 다시 30일 간의 시간을 기다리는 데에 써야 한다. 하지만 기꺼이 다시 그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의 얼굴을 보고 성규는 말을 할 것이다. 지금처럼 그의 얼굴을 마주 보고, 그의 검은 눈동자에 맺힌 얼굴을 보면서,
“기다렸어. 그래서 보고 싶었어.”
뭐...명수는.. 산의 영물이라는 설정으로...(..)
분량도 참... 면목음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