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1 성깔전력 :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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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기억했다. 그를 처음 발견했던 날의 그 모습을. 그 날 그가 나타났던 공간의 그 분위기와 공기의 상쾌함, 그 청량함을 받는 것 같은 그의 옷차림. 그리고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할 것 같은 그의 순한 웃음까지. 소년의 기억 속에서 그 것은 아주 선명하게 색체를 가지고 끊임없이 재연됐다. 그 것은 소년의 기억력이 남들보다 빼어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 조금 보태서 그에게 품은 감정이 조금 특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것은 언제나 시답지 않은 어투로 그가 건네는 ‘안녕’ 이라는 한마디 인사말조차도 소년이 나날이 조금씩 달라지는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와도 일맥상통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의 소년의 하루는 집 앞에 조그맣게 펼쳐 놓은 평상위에 올라 앉아 그 앞에 길을 지나갈 그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은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기 보다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 그가 소년의 앞에 위치하게 10미터 전 쯤부터 그의 발걸음 소리를 소년은 구분해 낼 수 있었다. 날마다 발걸음의 무게감이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그 걸음의 보폭은 거의 일정해서 그의 발걸음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하면 소년은 벌떡 일어나 길가 가까이에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그 때마다 소년의 심장소리는 점점 가쁘고 크게 날뛰지만 그는 그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소년의 표정은 늘상 같기 때문이다. 반면 그 조금 먼 거리에서 걸어오는 그는 소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적부터 조금씩 표정이 변하기 시작한다. 매일매일 보건만 매일매일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아주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듯이 아주 밝은 표정으로. 그러고서는 늘상 비슷한 목소리 톤으로 소년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다.
“안녕 성종아. 오늘도 일찍 나와있네.”
“안녕하세요.”
그의 인사말에 따라 소년은 그 대답과 함께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낸다. 그러고서는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한 눈에 훑어낸다. 크지 안은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그의 하늘색 와이셔츠가 그동안 본 적이 없는 것임을 소년은 눈치챈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조금씩 다 다르기 때문에 없던 셔츠를 알아내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다. 소년은 얼른 그의 곁에 서서 발걸음을 맞춘다.
“선생님 오늘 새 셔츠네요?”
“아, 응. 이상해?”
“아뇨 아주 잘 어울려요.”
“다행이네.”
그가 좋아하는 학생 흉내를 내는 것 역시 아주 쉬운 일이다. 그는 소년과 같이 붙임성 좋게 따르는 학생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소년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가 좋아할 법한 사소한 칭찬 한마디 씩과 아주 붙임성 좋은 소년의 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일이었다. 더불어 아주 어리고 천진한 소년 자신의 맑은 미소까지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소년에게아무런 방어체계도 올리지 않은 채 소년을 가까이 두는 것에 거리낌을 가지지 않았다. 크다고 할 수 없는 눈을 잔뜩 휘어트리며 웃는 그를 마주보며 소년도 역시 함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 준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년 자신이 그와 같은 교사 안에 있을 수 없다는 크고도 작은 사실 하나였다. 하지만 그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제 10월이니 반년도 지나지 않아 소년은 그가 출퇴근 하는 멀지 않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예정이었다. 요즘 소년은 그것을 아주 학수고대 하는 중이었다. 그가 부임해 온지 여러 날이 지나지 못했으니 적어도 소년이 진학 할 때까지 그는 그 학교를 벗어나지 못할 게 뻔 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머리가 커질 소년이 그에게 마음을 전달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오늘도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선생님한테 빨리 국어든 문학이든 배우고 싶어요.”
소년의 기특한 말에 그 역시 맑고 무해한 웃음을 짓는다.
다 옮긴줄 알았는데 이게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