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하나

[열성/로플4회배포] 마음을 들고,

(청)새치 2016. 8. 28. 22:58









도대체 언제부터였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건 정말로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이 쫓고 있었고 마음이 갔고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 걸 두고 가랑비가 옷을 적시는 것 같다던가 물이 든다던가 하는 말로 비유하는 것을 많이 보기만 했었는데,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짝이었다. 다만 젖은 것은 내 마음이고 물든 것은 분홍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형을 생각할 적마다 느끼는 마음의 무게감이 딱 그랬고 감정의 색이 딱 그랬다. 내가 아마도 형을 정말로 좋아하는가 보다고 깨달았을 때부터. 그리고 나는 더욱 날뛰었다. 쉴 새 없이 간질간질 거리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그리고 그 말이 기어코 형의 입에서 나왔을 때 나는 쿵 하고 떨어지는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아마 얼굴에 다 나왔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 보면 그 말이 나온 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보이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매달리는 내 얼굴에 간절함이 묻어났을 지도 모를 일이고, 좋은 게 생기면 제일먼저 손에 쥐어주는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태연한척 놀러 나가자고 권유하는 내 표정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유야 갖다 붙이면 다 말이 되었다. 그렇다고 형이 내 마음을 다 알아 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슨 일이 있느냐 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형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면 내게 무슨 말을 해 올까.


“엥? 왜 갑자기?”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었다. 당장 그만 두어라.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해라. 아니면 마음은 고맙지만 널 받아줄 수는 없다. 다르게는 네가 그런 사람 인줄은 몰랐다. 정말 실망이다. 같은 것 까지. 긴 시간도 아니고 아주 짧은 순간에도 그렇게 많은 말들을 떠 올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형의 입에서 나올 법 하지 않아서, 나는 다시 조용히 그 생각들을 접어 구석으로 치워 버렸다.


“네가 맨날 할 말 있는 것처럼 날 보잖아.”


그러니까 아직.


“그런가?”
“어, 그러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기꺼이 밖으로 빼 내어 보여줄 용기, 그리고 친구를 저어 버릴 정도의 과감함. 형은 그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잔뜩 불만이 서린 것 같은 얼굴을 보면서 나는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는 웃음을 짓는다.


“정 원하신다면.”
“그래.”
“나 배가 많이 고파.”


푸슈슉-
얼굴 표정이 바뀌는 데서 소리가 난다면 아마도 그런 소리가 났을 거다. 그 목적이 어디인지 모를 기대감이 사정없이 바닥으로 꺼지는 소리. 커다란 포장지에서 겨우겨우 힘내서 꺼내 놓은 게 결국엔 별 것도 아니었던 것에서 오는 실망감. 그런 것들이 한 데 뒤섞인 것 같은 감정이 그 폭이 좁은 얼굴에 다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괜스레 식은땀이 슬슬 차오르는 손바닥을 나는 흡수력이 별로 좋지 못한 바지에 슥슥 닦아 낸다. 축축한 것이 스며들지 못하고 바지 천에 그냥 덕지덕지 묻어났다.
큼큼. 누가 들어도 어색한 소리로 나는 목을 가다듬는다. 남들만큼 염색을 자주 하는데도 벌써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피 가까이 검은 머리칼을 아무 의미 없이 나는 슬금슬금 내려다본다. 좋아하는 정수리. 가끔 저 위로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입술을 내리 누르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뭐 먹고 싶은데?”
“뭐 먹고 싶은지 말하면 사주나?”


능청스럽게 말 하면서, 이왕이면 해가 중천에 뜬 이 시간에도 밖이 아니고 둘이 침대에 누워서 한 낮의 여유를 즐기는 것을 상상을 한다. 이왕이면 창은 아주 크고 넓었으면 좋겠고 또 햇볕이 아주 잘 드는 남향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 안에서 함께 잠들고 함께 눈을 뜰 수 있으면 아주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은 벌써 셀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이 해오던 상상이다.


형은 아주 자연스럽게 피식 하고 내 마음을 풀어버리는 웃음을 내 뱉었다. 뒤이어 입 밖으로 흐를 말의 어투, 목소리 톤 그리고 그의 기분까지도 나는 상상을 해 낼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형은, 나의 예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말 한다.


“그래, 나 아니면 누가 널 챙기겠냐.”
“오올”


과신을 하듯 넓게 편 어깨와 살짝 치켜 올리는 고개 같은 것들로 미루어 형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그 것에 기꺼이 응하며 이번엔 정말로 마음을 놓고 그에게 동조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는 것도 지금은 가능하다.


“진짜 뭐든 말해?”
“뭐, 일단 들어보고.”
“고기! 고기!”
“대낮부터 무슨 고기야! 냄새나게!”
“아니 칼질! 칼질!”


장난스럽게 자꾸만 이어지는 선문답은 결국 양 미간에 아주 짙게 잡힌 주름과 함께 처참한 결말을 내리고 만다. 나에게 잡힌 팔을 구원하려는 게 빤한 몸부림 후에는 사자후를 내 지르듯 아주 커다란 목소리로 짧게 한 마디를 잇는다.


“야!”


그러면 나도 같이 대한다.


“왜!”
“미쳤어?”
“다 사준다매!”
“이게 진짜 기어올라!”
“아 그럼 사준다 말을 말든가!”
“아! 씨 진짜 이성열! 앞장서든가!”


분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신경질이 아주 잔뜩 섞여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나는 아주 자그마한 브이를 그려 보여 준다. 아직 씩씩 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한 그는 콧김을 뱉으면서 고개를 휙- 돌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런 흐름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일종의 항의다. 이럴 땐 소리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서 입모양만 웃어야 한다.


“진짜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간다?”
“아 비싼데 갈 거면 네 돈으로 내라?”
“내가 형 지갑 사정을 모르냐?”


아무런 사심도 섞이지 않은 미소를 보여준 후에야 나는 걸음을 먼저 옮긴다. 내 뒤로 뒤따르는 발걸음 소리에 잔뜩 짜증이 섞여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오는 통에 나는 다시 소리 없는 미소를 짓는다. 모든 행동과 표정에서 형의 감정은 아주 알아채기가 쉬웠다. 근처에 있는 가격대 있는 레스토랑들을 떠올리면서 그 짜증을 느끼는 것도 누가 들으면 변태라고 진저리 칠만한 일이지만 조그마한 유흥거리 중 하나다.


*


“형”
“왜?”


한창 고기 위를 움직이던 나이프가 우뚝 멈추어 서고, 함께 고기를 내려다보던 시선도 길을 옮겨 나에게로 향한다. 조금 갑작스러운 부름에 궁금증도 잔뜩 섞인 표정이 얼굴 위로 올랐다. 물을 한 모금 넘기면서 생기는 정적과 소리가 생각보다 조금 과하게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에 그 정도의 시간마저도 조금 모자라다.


“말 해봐.”


말을 덧붙이면서 시선도 한층 더 곧게 날아 들어온다. 더 이상 뜸을 들이지 말라는 무언의 종용일 것이다. 물 잔에서 완전히 손을 놓지 못한 채 나는 조심스레 말을 고른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도, 오해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말 한마디 일 뿐인데 그 것을 입에 올리고 대답을 듣는 것은 조금 심각하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건 순전히 내 마음을 가득 채운 형에 대한 마음 때문이다.


“성규형.”
“아, 그러니까 왜?”
“형, 명수랑 일 언제까지 할 거야?”


허.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그런 헛웃음이다. 별 대단한 것을 다 물어본다는 표정이 함께 나를 향한다. 그걸 마주하는 내 표정은 그에게 어떻게 보일까? 그냥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지금 내 얼굴에는 웃음기가 하나도 없을 거라는 점이다. 분명하다. 나는 지금 아주 긴장해 있고, 아까 전처럼 흡수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바지 천에다 대고 축축한 손을 자꾸만 문대고 있다. 덕지덕지, 내 감정처럼 바지에는 축축한 것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어디 하나 제대로 흡수 되는 곳 없이 그렇게 겉돌면서 덕지덕지 붙기만 했다.


“난 또 뭐 엄청난 걸 물어본다고...”


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한동안 멈추었던 나이프와 포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정도 부담의 질문을 나는 참 천근만근의 무게를 느끼면서 이고지고 버티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다. 나는 내 두 손을 여전히 바짓단 위에 올려둔 채 그의 가벼운 질문에 대한 취급을 가만히 인내한다.


“그렇게 별거 아니면 그냥 대답이나 하면 되겠네."

“말해 뭐해. 뭐, 평생?”
“뭐?”
“왜, 나 걔랑 평생 일하고 싶은데?”
“걔가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냐? 쓰는 것마다 베스트셀러인데. 걔가 나 싫다고 하지만 않으면 난 평생 해먹어야지?”


정말 빠르게 속사포처럼 말이 쏟아진 뒤에 먹기 좋게 잘린 스테이크가 다시 그의 입 안으로 자취를 감춘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는 것으로 나의 유감을 표현한다. 아마도 형은 그 행동의 이유를 알아채는 섬세한 관찰력은 없을 것이다.
아주 조용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사실은 마음속으로만 나는 말을 덧붙인다. ‘그럼 평생 평이 명수랑 떨어질 일은 없겠네.’ 한 번 뭉클 하고 부서질 것처럼 휘청거리는 이 마음은 누가 받쳐 잡아주나.


나는 내 친구가 품은 마음이 그 행로를 어디로 잡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정도다. 벌써 햇수가 두 자리에 다다를 정도로 오랫동안 알고지내면서 주먹다짐이고 말싸움이고 마다한 것이 없었다. 놈의 시선이 걷는 길만 보아도 거기에 숨은 감정이 무언지 눈에 다 보였다. 의도치 않게 이번에도, 나는 그걸 알았는데도 애석하게도 내 마음의 길을 다스리지 못했다.


“걔는 형 엄청 좋아할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거.”


나는 그에 동조하는 것처럼 웃음을 흘린다. 그의 입 안으로 고기 조각이 다시 하나 더 자취를 감추러 들어섰다. 대화는 자꾸만 나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튀어 나가려 한다. 조절이 되지 않는 대화, 그리고 나의 마음, 나는 그만 지끈 거리는 머리 한 쪽을 손끝으로 꾹꾹 눌러 진정 시킨다. 그 정도는 신경 쓸 줄 아는 김성규는 눈썹 꼬리를 축 늘어트리고 나에게 묻는다.


“두통이야?”
“응, 편두통”
“많이 아파?”
“그냥, 좀 아프네."


평소에는 들을 일이 거의 없는 걱정을 담은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귓가 주변을 괴롭히며 날뛰던 두통은 빠른 속도로 기세를 누그러트리며 잦아들었다. 어차피 이럴 마음이면 시작이나 말지.


“약, 먹을래?”
“아니 이제 괜찮아.”


정말로 괜찮은 것처럼 보이도록 두 손을 머리 양옆에서 탈탈 털어 보여준다. 상징적인 의미밖에 되지 못하는 이 행위에도 그는 안심을 한 것처럼 늘어트렸던 눈썹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잡아 올렸다. 그러고서 그 성질을 누그리지 못하고 꼭 한 마디를 덧붙이고야 만다.


“넌 무슨 백수라면서 직장인들이나 하는 고질병을 앓고 그르냐."


정말로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허, 하고 헛웃음 같은 것을 뱉는다. 그 백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어디 사는 누구인지 생각하면 그렇게 헛웃음이 나와도 이상하지가 않을 것이다.

나는 한참이나 멈추었던 포크질과 나이프 질을 다시 시작한다. 처음 나왔을 때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지 않는 스테이크는 조금 버석 거리면서 나이프에 짓이겨 눌렸다. 그리고 식은 소스는 고기조각에 유난히 질척이면서 한 겹 발렸다. 그 익숙한 것을 나는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다 식었네.
“네가 안 먹는 사이에 다 식어 버렸잖아.”


탓을 하는 폭이 좁은 얼굴을 나는 다시 바라본다. 천천히 나는 입안에 문 것을 아래위로 맞닿는 이로 씹었다. 조각조각 풀린 고기들이 입 안에 잔뜩 풀린다. 내 뭉클한 마음도 이리저리로 흩어져 구석구석으로 풀린다. 그리고 다시. 나는 내 마음이 모이는 곳을 본다. 어쩔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다시,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그를 나는 바라보고서,
잔뜩 물들고 젖은 내 마음을 들고 웃을 수밖에.













마음을 들고,
w. 청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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