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규] 그들의 연애 for.andante
2012.01.18
센티멘탈시너리 :: time after time
햇살 냄새가 났다. 겨울의 냉기에 찬 기운을 잔뜩 머금은 창을 타고 넘어오는 햇볕에서는 따뜻하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햇살을 가득 받아 광합성이라도 하는 듯 반짝반짝 거리는 검은 머리통이 서른 개 남짓이었다. 성규는 그 머리통들을 한번 훑으며 제 손에 들린 교과서를 다음 장으로 넘기었다. 잠에 취해 교과서 지문을 읊는 탁한 목소리를 들으며 성규가 바로 옆에 있던 책상표면을 손톱으로 톡톡 쳤다. 화들짝 올라오는 검은 머리통이 성규를 보았다가 다시 책상위의 교과서로 향한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느슨하게 걸쳐 있던 샤프펜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얘들아"
불경을 외는 듯 단조롭게 울리던 목소리가 그치고 이번엔 서른 쌍의 눈들이 성규에게로 몰렸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으로 저를 뚫어져라 보는 시선들을 받으면서 성규가 씨익 하고 웃었다.
"졸리냐?"
"네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대답소리가 흡사 좀비들의 신음소리와도 같아서 성규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했다.
"수업시간 10분밖에 안남았다 이것들아"
숫자 2에 다다르고 있는 분침을 보며 성규가 말하자 곧이어 우우 하는 야유소리가 교실을 모두 메워 버렸다. 결국엔 수업이 중단 되겠거니..하는 마음인지 점점 더 커지는 야유소리 속에서 성규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네 놈들 좀 있으면 고3이다! 라고 소리 질러 봤자 '아직 아니잖아요~' 하는 태평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한 발작 물러서는 것은 성규의 몫이었다. 수업을 포기 했다는 뜻으로 교과서를 탁- 하고 덮자 교실에 울리던 소리들이 거짓말 같이 쑥 하고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뭐 할 건데?' 헛헛 하는 헛웃음을 내 뱉으며 성규가 말하자마자 어디선가 '선생님 지문 읽어줘요!' 하는 소리가 툭 하고 튀어 나온다. 곧이어 '선생님 번데기!!' '번데기!' '번데기!' '시옷 번데기!!' 하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툭툭 튀어 나왔다. 이것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하며 성규가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입 다물고! 수업 그냥 끝내자 아주!"
이번에는 에이~~ 하는 야유가 터져 나온다. 그러면 10대 후반에 걸쳐진 그 장난기가 귀여워서 성규는 결국 씨익 하고 웃고 마는 것이었다.
"됐고 오늘 종례 없으니까 청소 알아서들 하고 야간자습 하고 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네~ 하는 소리와 선생님 데이트가요? 하는 소리가 동시에 날아들어 성규의 머리를 뎅뎅 하고 때린다.
"니들이 알아서 뭐하게!"
라고 버럭 소리 지르며 성규는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요즘 애들은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다. 그래도 그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는 것은 반쯤은 사실이라서.
교실 문이 닫히자마자 수업을 끝내는 종소리가 울렸다.
"오래간만이네?"
"아 그런가?"
아는체 해오는 윤기에게 대꾸하며 성규가 의자를 빼 내어 앉았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외투를 벗어 던졌지만 더운 공기가 훅- 하고 끼쳐 올라왔다.
"넌 선생이라더니 옷이 되게 편하다?"
"선생이 별 건가?"
약간 퉁명스런 성규의 대답에 윤기가 땅콩을 집어 먹으며 그래? 하더니 고개를 팩 하고 돌린다. 과제를 하든 놀든 공부를 하던 뭘 하든지 간에 순환이 빠르던 모습이 하나도 바뀐 것이 없어 성규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고 말았다. 그러고서는 앞에 놓인 땅콩을 집어 들고 입 안에서 오독오독 씹어 넘겼다. 가루로 바스러진 땅콩이 입 안 구석구석에 붙어 고소한 향이 계속 돌았다. 저마다 할 말이 바쁜지 웅성웅성 거리는 공간을 훑다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어 턱을 괴었다. 명백한 지루함의 표현이었다. 몇 시나 됐나 하고 살펴본 핸드폰 시계는 이제 고작 8시30분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먼저 가 있어요.]
하는 문자가 온 것이 성규가 학교를 나서던 오후 4시30분 경. 그리고 지금 시간 8시 30분. 그동안 명수에게서는 아무런 문자도 없었다. 많이 바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유난히 반쪽이 된 얼굴이 뭉클 했는데. 가뜩이나 바쁜 남자라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봤는데 이번에도도 제대로 얼굴 보기는 글러 먹은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 화풀이를 하듯 다시 한 번 땅콩을 오도독 씹어 넘기었다.
분위기는 대충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누가 봉사동아리 모임이 아니랄까봐 누군가가 '조만간 한번 뭉쳐서 사랑의 집 가야지'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긍정을 표하듯 웅성웅성 거렸다. 빠르게 날짜와 시간까지 잡혔다. 근처의 누군가가 '성규 너는 시간 괜찮아?' 라고 물어와 대답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얘도 시간된단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시 왁자지껄 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파하핫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쪽 너머 술집 문이 열린 것도 그 때였다.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빛이 들어온다. 김명수가 들어온다.
안 그래도 와글와글 하던 테이블은 더욱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야!' 하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잘 나가나 보다?' 하는 소리까지 명수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나 올 땐 조용 하더니만.' 하는 윤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그제야 김명수가 잘난 사람이구나 싶은 것이었다. 얼굴 잘 생겼지, 옷빨 잘 받지, 일도 잘 하지....잘...하지....잘....났....지.... 잘 났구나.. 턱을 괸 채로 사람들에 둘러싸인 명수를 바라보았다. 멍한 표정으로 점점 멀어져서 점이 될 것만 같은 모습을 빤안히 응시한다. 그 걸 어떻게 알았는지 화드득, 하고 성규를 돌려다 본 명수가 '미안' 하고 입모양으로 말 하며 눈으로 웃었다. 귀신같지 참.. 순간 등골이 찌릿찌릿 하고 울리는 것을 느끼며 성규가 턱을 괸 팔을 스르륵 제 무릎 위로 내렸다.
성규의 청록색 가디건 소매가 손등까지 내려 와 있었다.
"나 오늘 못 가겠다."
성규가 교무실 문을 가볍게 밀자 자그맣게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왜요?]
"학교에 일이 생겼어.."
빛이 없이 어두컴컴한 교무실 벽을 더듬다가 손에 걸리는 스위치를 딸깍 하고 누른다.
[무슨일요?]
단번에 밝아진 교무실은 아무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좀..."
[늦게라도 와요....보고싶어...]
"응.."
나도..보고 싶다...하는 말을 속으로 씹어 삼키고는 제 자리를 찾아 앉으며 전화 종료버튼을 눌렀다. 곧 까맣게 텅 비어 버리는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성규는 한숨을 푹- 하고 내 쉬었다. 학교에 일이 있는 것은 맞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전날 처리해 둔 서류를 순서대로 정리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어서 금방 끝날 것이었다. 명수에게 한 말은 성규 자신도 의아 할 만한, 의도치 않은 거짓말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이 술술 나갔던 것일까. 성규는 서류 더미를 끌어당겨 제 앞에 턱 올려놓고선 고개를 푸욱 하고 숙였다. 명수는 저의 거짓말을 알아 차렸을까. 마지막의 목소리로는 그 속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모임에 나타났던 명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어른어른 거렸다. 피트가 잘 되는 슈트와 누가 봐도 나 잘났어요 하던 표정과, 모든 것에 화룡점정을 찍듯, 자알 생긴 얼굴과 미소까지. 평소에 저가 알던 명수의 모습이 아니어서 잠깐 두근 했었다. 언제 저렇게 커 버렸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쌓여있는 모습이 어색해서 성규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 혼란스러운 거다. 저는 아직도 그 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데 명수는 벌써 저만치 앞 서 나간 것 같아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것이다. 라고 성규는 생각했다. 먼저 좋다고 따라다닌 건 저가 아니라 명수인데……. 생각하니 또 억울한 마음도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아..우울하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혼자 중얼 거리며 제 책상위에 엎드렸다. 정말로 우울해..라고 생각하며 성규는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드르르륵.
핸드폰이 반짝반짝 거리며 요란하게 울렸다. 화들짝 놀라 일어난 성규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핸드폰 화면에 반짝거리고 있는 명수의 이름이었다. 명수의 이름과 함께 눈에 들어온 시간은 놀랍게도 저녁 여덟시였다. 결국 하려고 했던 일은 대낮부터 자버린 자신 덕에 시작도 못한 게 돼 버렸다. 성규는 터져 나오는 한숨을 푸욱 내 쉬고는 익숙하게 화면을 슬라이드하며 핸드폰을 그대로 제 귀에 가져다 대었다.
"여보세요?"
[나에요..아직 일 안 끝났나?]
"아니 끝났어.."
[어디에요?]
"학교"
[알겠어요.]
성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명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왜인지 급하게 전화를 걸고 끊어 버리는 명수의 성질은 바뀌지도 않아서 풋 하고 웃음이 나온다. 성규는 다시 서류더미를 책상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버린 것은 아까웠지만 그래도 여기에 더 있어봤자 시간을 더 버리는 꼴 밖에 안날 것 같아서 가방 속에 잡다한 것들을 모두 쓸어 담아버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제 눈에 까맣게 가려지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 해봐요. 봉사활동 가기 싫어서 농땡이 친 거죠?"
귓가에 나직이 울리는 목소리는....아. 익숙한 목소리였다.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냄새에 익숙한 온도의 품과 그리고 익숙한 속삭임.
"아니야..."
"거짓말.."
성규의 대답에 몰캉한 것이 목덜미를 한번 꾹 내리 누르고는 바로 단단한 팔이 뒤에서부터 어깨를 감았다. 성규의 뒤에서 뜨거운 숨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나도."
명수에게 대답하며 성규가 나직하게 웃었다.
바보같이 뭘 고민 했을까.
어차피 이 남자는 내 남잔데.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시방 이것이 뭐시여 ㅋㅋㅋㅋㅋ
내 손이 나를 배신했어 ㅋㅋㅋㅋㅋㅋㅋ
시발 미친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하는 거임 ㅋㅋㅋㅋㅋㅋㅋ
아 존나 나 엘규 존나 좋아하는거 맞음..
나 엘규 존나 좋다니까?? 시발 세상에서 제일좋아 ㅠㅠㅠㅠ 엘규 행쇼 영사 ㅠㅠㅠㅠㅠㅠ
브금 시발 ㅠㅠㅠㅠㅠㅠㅠ 난 시발 브금 고르는 센스도 고자인가봄 ㅠㅠㅠㅠㅠㅠㅠ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