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7
까맣게 깊어만 가는 하늘에 점점이 별이 박혀있었다. 노랗게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그 별들을 성규는 올려다보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필요치 않은, 아니 할 수 없는 행위가 돼 버린 탓이었다. 그 것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지라, 이제는 밤하늘의 모양조차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성규는 밤하늘에 무던해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옛날 언젠가는 남녀가 함께 앉아 밤하늘을 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하는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것도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부옇게 기억 저 너머로 흐려져 가기만 할 뿐이었다. 안개가 낀 것 처럼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그 옛날을 애써 더듬으며 성규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니 별을 보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박혀있는 노란별을 본다. 얼마 전에 코드네임까지 붙었다고 하던가. 이제는 저 별을 보는 게 저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다시 마른침을 넘긴다.
별의 빛이 밝아졌다 다시 돌아온다.
성규는 그게 무슨 뜻이지 알고 있었다. 손에 땀이 차는지 아니면 물병에 물기가 맺히는지 자꾸만 미끄러졌다. 습한 공기는 끈적하게 성규의 맨살을 훑는다. 골목 벽에 등을 기대었다. 차가운 기운이 등에 어려 솜털이 곤두선다. 저 멀리 어디선가 부터 탄내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성규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떠 올린다. 하나, 둘, 셋. 속으로 세면서 초조하게 두근거리는 제 심장소리를 듣는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벅저벅.
익숙한 발자국 소리와 실루엣을 확인 했을 때, 성규는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 쉴 수가 있었다.
-
"왜 이렇게 늦었어?"
"눈을 피하는 게 좀 어려워야지.."
호원이 물병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성규는 가만히 바라본다. 바닥에는 벌써 몇 개인가의 물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성규는 가만히 머릿속으로 셈을 한다. 지금까지 호원이 들이켰던 물병의 개수, 그리고 오늘 얼마만큼의 힘을 썼는가 하는 그런 것들을 성규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셈을 하고 있었다.
"갈증이 가시지 않아."
"앰플.. 안 챙겼어?"
성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원은 주머니 속에서 작은 병들을 꺼내 바닥에 떨구었다. 짤그랑 거리는 소리가 빈 창고에 크게 울렸다. 다섯 개 정도 되는 빈 병들이 바닥에 구르는 것을 보며 성규는 거칠게 제 머리를 흩트렸다. 확실히 평소보다 많은 양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그들에게 시달린 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호원아."
"......"
"코드네임이 걸렸어."
성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호원의 눈이 손가락을 따라 올라간다. 점점이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별. 을 호원은 가만히 바라본다. 지난주 까지는 별 볼일 없는 별이었는데 말이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마지막으로 넘겼다. 목이 탈 듯 한 갈증이 겨우 가시는 듯 했다.
"확실히 강도가 다르긴 했지."
성규의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호원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올곧게 저를 바라보는 성규의 눈길과 마주 한다. 성규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어 호원은 그를 더 깊이 바라본다.
"앞으로.."
"......."
"단독행동은 하지 말자."
제 뒤통수를 뎅- 하고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아니다,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형"
"너 기다리는 거."
"형!-"
"이제 답답해."
성규가 바닥에서 유리병을 주워 올렸다. 손바닥 위에서 유리병이 위태롭게 흔들 거렸다. 그리고는 곧 콰직-. 흔적도 없이 유리병이 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정도면 꽤 쓸 만하잖아"
성규가 웃었다. 순간 별 하나가 반짝이는 것을 호원은 보았다.
-
"현상수배가 걸린 것 같아."
성규가 탁자 위에 널따란 종이를 내다 깔았다. 수배범의 얼굴도 없이 그저 몇 번째 이어지는 화재에 대한 내용만 적힌 수배지였다. 호원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지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수배범 얼굴도 없네."
"얼굴이 있으면 더 큰일이지."
대꾸하며 성규는 주머니에서 꺼낸 껌을 탁자 위에 모두 쏟아 내었다. 그리고는 늘 하던 버릇처럼 색색 별로 모아 케이스에 쏟아 넣는다. 그 모습을 보며 호원은 제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그래서 어쩌자고?"
"좀 기다렸다가 시작하자."
성규의 목소리는 아침인사를 하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그리고는 모두 입을 닫아버린 방에서는 이따금 성규가 껌을 챙기는 소리, 그리고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흐르지 않았다. 호원이 팔짱을 풀어내고는 다시 제 허리춤에 손을 기대었다. 성규는 이제 절반정도, 껌을 챙겨 넣고 있었다.
"쟤네 내 얼굴도 몰라"
"얼굴은 늦게 알려질수록 좋은 거야"
성규는 고개조차 올리지 않는다. 호원은 그 것이 성규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임을 알았다. 한 숨을 쉰다. 성규는 가끔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그 것이 모두 저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됨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여기서 말을 더 길게 끌어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터였다. 그래서 입을 다무는 것은 결국 호원이 된다. 한숨을 쉬고 팔짱을 끼고 호원은 성규의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예쁘게 가르마를 탄 정수리가 가지런했다.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성규의 손을 본다. 아직도 껌을 색색 별로 모으는 것을 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 쉰다. 저나 성규나 계약 행위가 꽤나 성가시다.
호원은 가끔 깊은 생각에 빠지고는 했다. 그러니까 성규와 저가 만났던 10살 무렵을, 아니 그때의 하늘을, 호원은 기억하고 생각해 낸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가. 까아만 밤하늘을 다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별들은 무리를 지어 반짝거렸다. 저기는 북극성이고, 저건 북두칠성이야. 그리고 저건 큰곰자리. 지금보다 앳된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그 시절의 하늘엔 분명히 반짝거리는 별들이 있었다.
참 내.. 이렇게 짧은 연성은 또 처음이네..ㅡㅡ;;
어쨌든 곰새끼와의 약속은 지켰다고 한다...
이호원 - 방화범
김성규 - 기물파손범
자세한 설정(세계관부분) : http://ko.wikipedia.org/wiki/DARKER_THAN_BLACK_-%ED%9D%91%EC%9D%98_%EA%B3%84%EC%95%BD%EC%9E%90-
근데 이렇게 짧은 글에 설정이 있을리 만무..
흑의계약자는 조은 애니여씁니다........ 내가 너무 패기부렸다... 하....
* 물풀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9-0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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