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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전력

2015.09.06 엘규전력 :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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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길이가 비슷한 초침과 분침이 함께 정각을 가리킨 그 때 마우스 위에 올라앉아 있던 명수의 손이 움직였다. 익숙한 이름의 게시판을 클릭하고 나서 게시 글 제목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훑는 곳은 바로 게시자 닉네임 란이다. 한 주에도 몇 번씩 보는 익숙한 닉네임들 말고, 일주일에 딱 한번 지금 이 시간에만 나타나는 그의 닉네임을 찾는 것이다. 그 몇 초 사이에도 글을 한참이나 많이 올라와서 다섯줄이나 밑에서야 그의 닉네임을 찾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뜻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닉네임은 존재감이 희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되자마자 게시판에 들어가 그의 닉네임을 찾아야 했다. 사실은 그저 그가 올리는 글을 단 1초라도 더 빨리 읽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만 자존심과의 타협을 그렇게 했으니 곧 죽어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목표했던 그 닉네임을 찾은 뒤에 명수의 손놀림은 더욱 더 거침이 없어진다. 늘 보아왔던 그 연재 글, 최근 명수가 빠져 있는 장르의 2차 창작물의 제목을 누르는 손길에는 다급함 마저 조금 묻어났다.

장문의 글을 불러오는 그 잠깐 동안의 로드타임에도 명수의 목구멍으로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혹시나 싶어 아까 전에 한 번 더 읽어 둔 전 편의 내용을 다시 복기하면서 그 잠깐의 시간을 넘긴다. 당연하지만 몇 초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화면을 가득 메우는 그 한글들의 향연을 명수는 조금 넋을 놓고 바라본다. 우스운 말일 수 있겠으나 매 주 겪는 그 순간들마다 자신이 꼭 그 한글 들 사이로 풍덩 빠져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소리를 어디 가서 하지는 않는다. 십중팔구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 다음부터 명수의 마우스는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그의 연재 글이 유난히 글자들이 빼곡히 들어찬 이유도 있겠으나, 사실은 명수가 단어 하나하나를 읽는 데에 시간을 좀 더 들이고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읽는 흐름이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저 글이 끝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워 시간을 더 들여서 읽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 하나를 읽는 데 드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5분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글 속에서 파란의 반전이 지나가고 광란의 밤이 지나 갔는데도 명수의 시간은 고작 15분이 지났을 뿐이다.

“하아..”

깊은 한숨이 나오는 이유는 앞으로 다시 7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이렇게나 긴데 정작 기다림을 해소하는 시간이 고작 15분이라니, 이건 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별 수 없다. 그와 명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저 생면부지의 남이니 말이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게시 글 밑에 감상 댓글을 다는 일이다. 이 연재 글, 아니 그를 알게 된 뒤로는 새 글이 올라올 때 마다 바로바로 감상 댓글을 다는 게 일상생활이 됐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조금 더 눈에 띄고 싶다는 욕심도 조금 담아서 장문의 감상을 붙인 뒤에는 그가 덧붙인 사족 ‘날이 꽤 추워졌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에의 답장 마냥 ‘민눈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하는 말을 덧붙인다.

그런 다음에는 그가 얼마 전에 공개한 SNS 계정으로 향한다. 만들어 놓고서도 한동안 들어가 보지 않았던 명수의 SNS 계정은 그 때문에 다시 활성화가 됐다. 그 덕분에 ‘민눈님 때문에 제가 SNS를 시작했어요.^^’ 같은 쓸 데 없는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게 됐으니 이것도 참 묘한 인연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항상 장문의 댓글을 남기는 자신을 기억해 두고 있었던 모양인지 바로 맞팔까지 해줬다. [피드백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같은 멘션도 받았으니 여러모로 계 탄 더쿠였다. 명수는.

@min_eyes 민눈님! 이번 편도 정말 좋았어요! 어쩜 매편 이렇게 박력 넘치는 글을 쓰시는지 정말이지.... 저랑 치킨이라도 한 마리 뜯으셔야겠는데요! 언제 시간 되세요! 제가 지갑 열어두고 있을게요!

140글자 제한 속에는 참 많은 말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당신 글을 정말 잘 읽었으며, 언젠가 당신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해 보고 싶다! 라는 조금 흑심이 들어간 의도까지도 꾹꾹 눌려 담겼으니 말이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명수의 손가락은 명쾌함 마저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그의 타임라인을 다시 한 번 훑는다. 따로 본 계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성향이 아닌 건지 SNS 계정 속의 타임라인에는 그렇게 많은 글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저 가끔 생각나는 대로 적는 듯한 아주 짧은 내용의 단문. 그리고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맛있는 것을 먹었어요. 하고 약간의 필터를 먹인 사진과 함께 올라오는 일상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그리고 아주 가끔 실없는 트윗을 하는 명수에게 보내는 멘션들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약간의 의외성이 있는 것은 그의 프로필 사진이 기본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 정도다. 키보드 위에 올라온 왼쪽 손과 마우스 위에 가볍게 올라앉은 오른쪽 손이 함께 프레임에 들어 온 사진이었다. 아마도 본인의 손인 듯 했다. 누군가 3자기 있지 않았다면 찍을 수 없을 그 사진 속의 손은 아주 매끈하게 잘 뻗어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의 손 보다는 조금 더 강단이 있어 보여, 남자 손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myongX2 네? 묭묭이님이 왜요? 사면 제가 사드려야죠..^^

약 10분 정도 후에 날아온 그 멘션을 보고 명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이 사람 낚였어! 멘션속에 은근히 숨겨 놓았던 검은 속내에 완전히 걸려들었다고! 그 묘한 성취감에 신이 나서 답을 적느라 키보드 위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다섯 손가락들이 아주 빠르고 경쾌하다.

@min_eyes 와 그럼 민눈님이 치킨 사주시는 거예요? 와 신난다! 언제 시간 되세요? 저 완전 한가해요^^

그러고서 다시 답멘이 올 때 까지는 지금까지보다 시간이 조금 더 많이 걸렸다. 아마도 이런 식의 갑작스런 들이댐은 무리였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서히 명수의 기대감이 사그라지어갈 무렵이 돼서야 그의 답멘이 온 것이다.

@myongX2 아.. 묭묭님 저 만나면 실망하실 텐데....

난데없는 그 말에 명수의 고개가 양 쪽으로 한 번씩 기울어졌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내 존잘님 만나는데 실망이고 자시고 할 게 있나? 다시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명수의 손가락은 아주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min_eyes 아니 민눈님! 저 만나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우세요??ㅠㅠ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우시면 별 수 없죠 뭐....ㅠㅠ.. 마음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해요...ㅠㅠ

@myongX2 앗! 아니에요! 그게 아니구! 저는 그냥 조금 걱정이 돼서...

@min_eyes 아니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하고 그러세요!! 아무런 부담 없이 나오시면 되는걸..ㅠㅠ

@myongX2 아.....

@myongX2 시간 언제 괜찮으신데요? ㅠㅠ

그의 마지막 멘션을 보고서 명수는 양 팔을 들어 올린 채 만세를 힘차게! 부르지는 못했다. 그 밤에 그랬다가는 경비실에서 항의 전화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 아주 조용히 크게 외쳤을 뿐이다.

“나! 드디어! 존잘님이랑 만난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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