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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전력

2015.12.13 엘규전력: 탐욕



  남자의 움직임은 아주 조심스러웠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소음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남자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움직임에 대한 결정이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미 여러 번 그러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든 의자 한 귀퉁이를 찾아 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누군가의 엉덩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단 한군데도 없었지만. 그리고 얼마간 남자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다르게는 곧 이르기 위한 말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면을 바라보기만 하던 남자는 곧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뒤로 젖혔다. 금방 다시 허옇게 흩어지는 입김 무리 속으로 고개를 끌어 내렸다. 그러고 나서 조금 후에 남자는 말을 시작했다.

  “탐욕. 탐욕이라고 했습니다.”

  검은 코트, 검은 목도리 그리고 검은 머리. 모든 어두운 색체를 끌어 담은 것처럼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는, 그와 다르게 조금 더 새된 소년의 고양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코트 소매 아래로 드러난 창백한 두 손은 힘을 주어 주먹을 꼭 쥐었다. 남자는 곧 회상을 하듯 한쌍의 눈꺼풀을 아래로 내려 감았다. ‘조금 길지만,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첨언 했다.

  나의 비뚤어진, 그리고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이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탐욕에 차 있다고요. ‘탐욕’ 그 것은 정말 옳지 않은 일입니까? 나는 아직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답에 가깝고자 헤쳐 본 기록들에서, 나의 탐욕은 죄가 되었고 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갖고 싶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내 마음이 어째서 죄가 되고 악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리하여, 나는 내 마음의 그름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여 지지부진 하게 마음을 이어왔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또한 지지부진 하게 나를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평생 나를 끊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나의 이 마음도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웃을 때면 눈썹 양끝이 하염없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변의 모든 해악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평온함을 느끼고는 하지요. 그 것도 요즘 들어서는 자주 보기가 힘이 들어 아주 귀중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 때문일까요. 대신에 그는 조금 난처한 듯, 입술을 앙다물고는 합니다. 사실은, 내 마음을 마냥 옳다고 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른 것 없이 옳다면 그의 난처함을 담은 표정을 내가 알 일은 없었겠지요.

  사실은 내가 잡고 있는 두 손을 놓아버리면, 그는 그런 난처함을 느낄 필요도 없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맑고 해로운 것 없는 웃음을 지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아아. 아닙니다.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탐욕이라는 단어로 일컬어지는 이유를. 아니. 저는 모르는 척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아.... 저는.....

  남자의 고개가 바닥으로 향했다. 이어지는 것은 약간의 물기가 어린 숨소리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입을 연다.

  이미 나보다 한 뼘이 더 컸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내 손을 잡아 주었죠. 지금까지 이렇게 지지부진 하게 손목이 잡혀 있을 것을 알았다면 그 때도 내 손을 잡아주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렇게나 검은 내 속과 다르게 그 때 그의 마음은 선의로 가득 차 있었을 겁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는 저와 새롭게 나타난 아버지의 존재를 낯설어하는 나의 모습을 그는 정말로 안쓰럽게 생각했을 테니까. 그 때는 저도, 내 마음도 일렁이는 것 하나 없이 평온했을 테지요. 아니,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서는 내 감정이 어디에서 발로한 것인지 조차 나는 알 수 없으니까요. 한 뼘이 더 크다고 한 것은 키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속마음조차도 나보다 이미 한 뼘 이상 더 컸습니다. 밤마다 잠에 들지 못하는 저를 끌어안아 준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요. 불빛 하나 없이 시커멓기만 한 그 긴 밤 동안 저와 함께 하는 일은 그에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 무해한 웃음과 함께 말이지요.

  나의 키가 그보다 한 뼘 더 커지고 나서도, 나의 길고 컴컴한 밤은 그와 함께였습니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내 옆에는 그가 있었고, 그의 품안에 나는 나의 몸을 구겨 안겼습니다. 아, 그게 잘못인 걸까요. 길고 어두운 밤의 시간동안 내 꿈속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나의 검은 속을 알았습니다.

  나는... 나의 탐욕은... 나의 형입니다.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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