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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하나

[완규] 이슬이를 부탁해 (1/2)

2012.11.11

시점과 시간순서가 뒤죽박죽입니다. 그냥 꼴리는대로 써서.....


#1
술, 담배, 섹스, 노래.

30이라는 숫자를 조금 더 넘긴 인생 속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당연하게 따라 붙어오는 단어들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했다고 하면 좋을까. 아니 대체로 중심은 그 것들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 것을 두고 누군가가 자근자근하게 말했다. '네가 마약을 하지 않는 게 마치 기적 같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것은 기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딱히 누군가가 본받아도 좋을 만큼 올바른 인생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엉망진창으로 살아오진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천지분간은 할 줄을 알았다는 뜻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와 정도를 벗어난 사고의 중간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그래도 조금은 비뚤어진 사고 속에서도 마약은 고려할 거리도 되지 못했다. 해도 좋은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구분은 잘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것은 인생 속으로 들어올 일이 없는 단어였으므로, 딱히 기적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로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것이 술, 담배, 섹스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람은 그 근본과 천성을 떨쳐내기 힘든 동물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중요했다. 그런 맥락에서 본능적으로 쾌락에 몸을 맡기길 좋아하는 천성임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술에 취해 한 번씩 크게 뒤집어지는 세상과 함께 몰려드는 몽롱함을 탐했고, 하얗고 매캐한 연기에 안도감을 찾았으며 온몸 구석구석 다가오는 미지근한 온기에 위안을 얻었다. 모든 것은 쾌락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따라오는 것은 여자의 존재였다.

남자가 여자에 끌리는 것은 본능이었다. 여자의 부드러운 피부와 곱게 내지르는 곡선, 그리고 말캉하게 잡히는 몸을 좋아했다. 물론 그녀들의 섬세함도 좋았다. 손끝, 혹은 발끝의 말초신경부터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하나씩 그리고 조심스레 건드리며 올라가, 결국 쾌락에까지 이르는 그 과정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몸과 몸이 만나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좋았고 여자와 함께하는 섹스를 좋아했다. 물론 과거 언젠가 동성애자라고 하는 부류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잘 떠오르진 않지만 남자를 좋아한다던 남자나, 여자를 좋아한다던 여자를 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기억은 희미했다. 그 것은 역시 여자를 좋아하는 성미 탓이다.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가 아니고서야 여자를 좋아하든 남자를 좋아하든 염두에 둘 일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으면 그 것으로 그만인 것을.

그리고 다시 노래.

쾌락을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의 귀결점은 결국 노래였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세상은 한 번씩 뒤집어졌고 몽롱함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안도감과 위안을 얻는다. 가장 건전하고 단순하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노래를 시작한 것은 필연이었다. 이미 알려진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만들고, 멜로디를 만드는 수순을 순조롭게 밟았다. 이미 만들어져 유명해진 노래들은 금방 질렸으므로, 노래를 만드는 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하고 싶은 말들은 모두 기타의 멜로디와 베이스와 드럼의 박자에 올라 세상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예쁘게 포장된 가사와 멜로디들이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 것은 곧 유명세를 가지고 돌아왔다. 생활은 빠르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 어떤 말이라도 잘 포장된 가사로 바꾸어 노래로 부르면, 어김없이 관심과 반응이 돌아왔다.

생각한대로 나오는 기가 막힌 노래들과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와 함께하는 섹스를 즐기는 데에 별다른 장애물도 없는 이 생활은 단조롭지만 즐겁고 마음에 드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2
성규는 다소 불편해 보이는 몸짓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등받이가 딱딱한 의자는 아무리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편안해지지가 않는다. 결국 성규의 눈썹이 팔자 모양으로 축 처지는 것으로 이 작은 사건은 마무리가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한다. 큰일은 그러니까. 뭐랄까. 성규의 눈앞에 닥친 이 상황이 큰일이라면 큰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포장마차.

엉성하게 사면을 감싼 불투명한 주황색과 투명한 천막 안에 플라스틱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가 얼기설기 엉성하게 늘어져 있는 전형적인 포장마차였다. 안 그래도 보잘 것 없는 성규의 어깨가 볼품없이 쭈그러들었다. 마음이 움츠러드니 몸도 같이 움츠러든다. 그걸 눈치 챘는지 옆에서 커다란 손이 어깨에 텁-하고 얹혀졌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눌러대는 탓에 성규의 축 처진 어깨를 더 바닥으로 꺼지게 만든다.

"이슬이 왜 이렇게 쭈그러들었어?"
"이슬이라고 하지 마요오"
"우리 이슬이 화나쪄염 우쭈쭈쭈"
"화 안 났어요."
"그래그래 일단 술 한 잔 쭉 들이키고 쭈욱"

결국 성규는 자그마한 소주잔 하나를 비우고 만다. 그러면서도 나름 근엄해 뵌다는 표정을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항변을 하니 돌아오는 건 예의 업신여김뿐이다. 같은 멤버 같았으면 금세 표독스런 응징을 가하고도 남음이었으나, 이곳에서는 성규 저가 오히려 막내였다. 그러니 어깨도 움츠러들고 몸도 움츠러들고 마음도 심지어는 목소리까지 움츠러들고 마는 것이었다. 그게 재밌는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그저 키들키들 거리며 웃고 만다.

"김종완이가 좀 챙겨주지 이슬이~"

참이슬 소주병을 몇 병이나 세워 놓고도 발음 하나 셀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는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성규의 눈은 억울하게 아래로 꺼질 뿐이었다.

"이슬이? 그럼 챙겨야지"

종완이 앞에 있던 소주잔을 비웠다. 그리고 뜨거운 어묵국물을 후루룩. 한 수저 거나하게 퍼 드시고는 빈 소주잔을 성규에게 내 민다. 챙긴다는 게 이런 뜻이었나 보다. 성규가 다시 억울한 눈으로 소주잔을 받아들자 주변에서 다시 키들키들 거리는 소리가 웅성인다.

*

"형.."

'종완혀엉..' 성규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갈 듯 점점 음량이 줄어들기만 했다. 손은 후드집업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발은 연신 땅을 박차며 동동 구른다. 당연하지만 종완은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한 듯 미동도 없이 빨갛고 커다란 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큰 소리로 종완을 불렀을 때, 비로소 검은 뿔테를 쓴 통통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대답은 맹한 목소리의 '왜' 단 한마디뿐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성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에 그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최종 목적은 역시

"집에 들어가셔야죠."

집에 들어가는 거였다. 한참 참이슬 병을 빠르게 비워가던 이들은 벌써 다 떠나가고 남은 건 성규와 종완 뿐이었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당연하지만 종완 때문이었다. 드디어 술자리를 파하고 집에 들어가나 싶었더니 갑작스레 우체통 앞에 서서는 미동도 없이 보고만 있는 것이다. 그 꼴이 보나마나 오래 걸릴 듯 해 보이는 탓에 성규는 우체국 앞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버렸다.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움직이겠거니 싶은 마음이었다.

"이슬아"
"이슬이 아니라니까."
"이것 좀 뽑아봐"

이번엔 무언가 싶어 종완을 보니 그 손이 우체통을 가리키고 있다. 순간 멍청한 눈이 뭘 잘못 본 건가 싶어 비비고 다시 보니 그래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우체통이었다.

"그 우체통이요?"
"저번엔 이거 뽑아놓고도 못 옮겼단말야. 이번엔 중앙선에 예쁘게 꽂아주자. 이렇게 예쁜 애가 여기 구석에 망부석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건 안쓰럽고 예산낭비고 재능낭비야"

성규가 헛헛하고 헛웃음을 뱉는다. 아아, 어련하시겠습니까. 당황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쯤 되면 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정말 이 팀 담당 매니저는 죽을 때 사리가 한 백만 개는 나올 거다. 궁시렁 대면서도 성규는 뭐에 홀린 듯 우체통 앞에 서고 만 것이었다.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운 우체통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성규를 위압했다. 대전 상대도 아니고 하물며 동물도 아니고 고작 무생물 우체통 따위에게 위압감을 느껴야 하다니. 성규의 미간이 유난스레 좁혀졌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얘 뽑다가 니 팔이 뽑히겠네. 너는 그냥 여기 위에 올라가는 거로 봐 줄게."

종완의 손이 가볍게 성규의 등을 두드렸다. 그 것에 성규는 빈정상함을 느꼈으므로, 그 손길(성규입장에서는 약올림)에 다정함과 위로와 응원의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종완만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집업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성규의 두 손은 어느새 가슴께에 올라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우체통에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옆에서 바라보는 종완은 그저 소리 죽여 웃을 뿐이다. 손가락으로는 꼼지락 거리며 핸드폰 카메라를 구동시켰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잠시 뒤에 사진 한 장이 추가될 게 분명했다.

이슬이도 어쩔 수 없는 이슬이었다.

#3
언제부턴가 종완의 귀에 당연하게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다. '너 좋아해서 회사 들어온 애가 있다더라.',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디션도 니 노래로 봤다더라' 하는 소문들. 당연히 그러한 소문들은 종완의 왼쪽귀로 들어와 오른쪽귀로 흘러 지나갈 뿐이었다. 간간히 뒤 섞여 흘러들어오는 '애가 참 귀엽게 생겼더라' 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조금 마음이 동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사내애라는 소리를 듣고 일찌감치 신경을 끊었다. 남자가 좋아하는걸 두고 뭘 어쩌라는 건가. 그걸 두고 거 마음 시꺼먼 것 좀 보소 하는 비난을 몇 번인가를 들었으나, 그건 또 그 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회사의 소속이라는 것은 꽤 별수 없는 것이어서, 종완은 그 소문의 성규라는 사내애를 만나고야 말았다.

당연하게도 그 것은 술자리였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연신 피어오르고 커다란 접시에 몇 가지의 과일 안주가 테이블에 올라오는 술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돈 아깝다고 눈에 두지도 않았을 안주였으나 요새는 좀 살만해졌는지 그런 메뉴도 마다하지 않았다. 웃음이 조금 비실비실 나왔던 듯도 싶다. 소주잔 보다 커다란 잔에 맥주거품이 차곡차곡 올랐다. 그리고 그걸 빠안히 바라보는 작고 기인 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던 와중에도 그 눈은 지금과 다를 것 없이 작았고 눈동자는 신기하게도 검고 선명했다. 스무 살을 이제 조금 넘겼다던가. 하는 것이 종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작 스무 살짜리가 저가 그렇게 좋아한다던 사람을 만났으니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 만도 하건만, 반응이 왠지 너무 차분하기만 했다. 그거에 또 허한 마음이 들어 성규 앞에 있는 잔에 맥주를 콸콸 따라 주었더랬다. 차고 넘칠 정도로 가득 찬 맥주 거품은 기어코 컵 밖으로 흐르고 말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은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괜찮다고 말하며 성규는 어색하게 웃었다. 눈과 눈썹이 억울하게 추욱 하고 내려가는 표정이 좀 귀여운 것 같았다.

"이름이 성규라고?"
"아. 네, 네! 스물한 살이에요"

딱히 할 말이 없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걸 물어보니 그 추욱 처지는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을 해왔다.

"그래 자주 보자."

이 정도면 꽤 쿨하고 멋진 모습일 거라고 종완은 멋대로 생각했다. 허세를 부린다거나, 멋있는 척한다던가 하는 것은 종완에게 꽤 익숙한 일이었으므로 멋쩍게 웃는 것은 성규뿐이었다. 두 손으로 커다란 맥주잔을 잡고 잔을 짠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고 정확하게 딱 반잔 정도의 맥주를 쭈욱 들이켰다. 꼴깍꼴깍 소리에 맞춰서 움직이는 성규의 목울대를 종완은 조금 유심히 바라봤다. 아니 왜? 자그맣게 떠오르는 의문을 가볍게 머리를 털어 떨쳐낸다.

"넌 김종완이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아냐?"

목구멍의 따끔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해지는 어택이 조금 당황스러운지 성규의 눈썹이 살짝 기울어졌다. 허허 하고 소리 없는 헛웃음을 내고 있자니 곧,

"얜 이슬이 좋아해 이슬이. 김종완의 첫사랑 참이슬!! 몰라?"

이번엔 가느다란 눈까지 같이 기울어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종완의 눈에 들어왔다. 그 국적을 알 수 없는 근본도 없는 헛소리가 웃긴지 당사자는 박장대소까지 시작했다.

"성규, 네 경쟁자가 얘라고 얘"

성규의 눈썹이 한층 더 억울하게 내려간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 종완은 더 심각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러고 있다간 경쟁자의 콧대를 꺾어줘야 된다며 참이슬 한 병을 다 원샷 해버리라고 할 기세다. 성규가 소주 한 병을 다 원샷을 하든 반병을 마시든 종완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 뒤의 뒤처리는 한 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젖살이 아직 다 빠지지 못해서 볼이 통통한 저 성규란 놈이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도 멀쩡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에 답은 조금 절망적이다. 저 쭈뼛 거리는 놈이 만취해서 무슨 짓을 할 것인가 하는 데에는 조금 흥미는 있지만 뒤처리는 해주고 싶지가 않았다. 약간의 연민이 섞이긴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이유는 귀찮음의 예방이었노라고 종완은 정신승리 하였다.

"그럼 쟤가 하면 되겠네, 이슬이."

김성규가 이슬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슬이 드립은 맛스타가 하신 개드립을 제가 주섬주섬 주워담았습니다.

아직 내가 쓰고싶은거 나오지도 않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뒤에 더 있을건데 올리는 이유는 홈페이지 리녈하고싶어서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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